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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카의 근육(1) - VIP (Very Important Part)

기사승인 2015.03.12  16: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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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동차가 드라이버의 컨트롤에 대해 예측 가능하고 민첩하게 반응하는 경우 우리는 ‘이 자동차의 핸들링 (Handling) 성능이 좋다’고 말합니다. 핸들링 성능이 나쁜 자동차는 반응의 불확실성이 크고, 쉽게 균형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하지 않은 자동차입니다. 핸들링 성능은 자동차 안정성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따라서 레이스 카 드라이버는 물론이고, 수백 시간의 트랙데이 경력을 자랑하는 프로페셔널 급 드라이버도, 심지어 운전대를 잡고 도로 주행에 처음 나서는 초보 운전자도 자동차의 핸들링 성능을 지배하는 기본적인 자동차 역학은 이해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혹자는 자동차의 핸들링 성능을 높인답시고 자동차 부품 딜러를 찾아 좋다고 하는 하드웨어들을 이것저것 사서 무작정 달기도 하지만, 이는 정력에 좋다면 닥치는 대로 먹고 보는 일부 남성들의 정력에 대한 미련한 집착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자동차의 성능 향상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하드웨어 세팅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태에서 어떤 퍼포먼스 부품을 ‘묻지마’ 식으로 장착하거나 불필요한 고가의 차량 옵션을 ‘보여주기’ 식으로 선택한다면 기대하던 성능 향상을 거의 맛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자동차의 핸들링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하드웨어의 역할을 이해해고 이들의 상호 작용을 이해하는 것은 지름신의 유혹 속에서 어떤 퍼포먼스 파트가 내 차에도 유용할 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출발점입니다.


▲ 로터스 F1 레이스 카 스티어링 휠

자동차, 특히 레이스 카의 핸들링은 매우 광범위하고 기술적인 주제이기 때문에 이를 한 줄로 요약·정리하는 황금법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레이스 카의 핸들링을 최선의 상태로 만들고자 한다면 레이스 카의 역학과 핸들링을 지배하는 여러 핵심 하드웨어들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며, 이러한 원리는 일반 자동차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평생 동안 운전을 하여도 레이스와는 전혀 상관 없을 일반 운전자라면 자신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운전의 한계를 알기 위해, 레이스 카 엔지니어나 드라이버라면 어딘가에 숨어있을 몇 퍼센트의 핸들링 성능을 찾기 위해 자동차를 흔들어 대는 여러 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연재를 통해 자동차를 구성하는 여러 하드웨어가 자동차의 핸들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목조목 살펴보고자 합니다.



자동차에 달면 좋다고 입소문이 난 서스펜션 업그레이드 파트를 거금을 들여 달았는데도 핸들링이 썩 나아지지 않았다면, 그것이 본인 운전 실력의 한계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어떤 파트가 자동차의 움직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서스펜션 파트 간의 부조화 때문일 수 있습니다. 자동차의 핸들링 성능을 최적화하는 일은 자동차의 다리 근육과 골격에 해당하는 파트들 간의 간섭이 최소화되는 최적점(Sweet spot)을 찾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꿀 세팅’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어떠한 기상 조건이나 노면 상태에서도 일관되게 우수한 핸들링 성능을 선사하는 만능 자동차 셋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영화 '겟어웨이(Getaway)' 중 한 장면

총격, 충돌, 역주행이 난무하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자동차 추격신에서 주인공과 악당은 달아나는 상대를 멈춰 세우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도심을 쑥대밭으로 만듭니다. 이들은 ‘저 자식의 머리통에 총알을 정통으로 관통시켜 오늘 끝장을 보겠다’고 작심한 듯 서로에게 총을 난사하여 유리창은 박살나고 차의 곳곳에 총알 구멍이 뚫리지만 공교롭게도 총탄은 이들을 요리조리 피해가고 추격전은 쉽게 그치지 않습니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이런 상황이 연출된다면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이들 중 하나는 반드시 총상을 입거나 사망하는 비인간적 결말로 이어질 것이 뻔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재앙을 막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어차피 서로 간에 정조준은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총알로 잘 뚫리지도 않는 강판 차체 대신에 고무로 만들어진 타이어를 겨냥하여 난사하다 운이 좋아 네 바퀴 중 어느 하나에만 명중 된다면 도주는 쉽게 저지될 수 있습니다.


▲ 부가티 베이론 '라 피날레'

타이어가 없는 자동차는 단 1m 도 스스로 이동할 수 없는 고철에 불과합니다. 부가티 베이론에 스마트의 14인치 휠과 타이어를 달고 달린다면 그 성능은 베이론이 자랑하는 공인 성능의 10% 언저리에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마치 우월한 심폐 기능과 골격을 갖추고 지능까지 뛰어난 육상 선수의 다리에 근육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단언컨대 타이어는 자동차를 자동차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하드웨어이고 타이어 역학은 대다수 자동차 동역학 교과서의 첫 챕터를 장식할 만큼 중요한 주제입니다. 현존하는 인류 기술 중 가장 진보한 기술만을 모아 만든 자동차라 하더라도, 이 자동차의 제동, 가속, 코너링 성능은 결국 앞뒤 네 개의 타이어가 도로와 접촉하는 손바닥 만한 네 개의 고무 패치, 즉 컨택트 패치 (Contact patch)만을 통해 발현됩니다.



핸들링 최적화는 전적으로 타이어 컨택트 패치의 접지력을 최대화하고 앞 뒤 축 사이의 접지력 배분을 맞추는 과정입니다. 자동차의 스펙이 결정되고 사용할 타이어가 정해지면, 이 타이어의 성능을 최대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남습니다. 자동차의 핸들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하드웨어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타이어 컨택트 패치 성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타이어 자체입니다.



타이어의 접지력은 타이어의 형태, 컴파운드 재질, 컨택트 패치의 크기, 기타 여러 환경적 요인의 영향을 받지만 그 핵심은 다음의 셋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도로와 접촉하는 타이어 컴파운드의 마찰 계수입니다. 끈적 할수록 빠르고 안전합니다. 두 번째는 타이어 컨택트 패치의 크기입니다. 컨택트 패치는 클수록 큰 힘을 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타이어를 짓누르는 수직 하중입니다. 타이어를 내리 누르는 힘이 커질수록 접지력이 향상됩니다. 하지만 자동차가 낼 수 있는 출력은 유한하기 때문에 마찰 계수, 컨택트 패치 크기, 수직 하중을 키워서 얻을 수 있는 성능 향상에는 한계가 있고 이 한계를 넘어서면 오히려 방해 요소로 돌변합니다.



자동차의 출렁임과 요동은 타이어와 직접 접촉이 없는 하드웨어 들을 통해 변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하드웨어의 목적도 결국은 타이어의 접지력을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서스펜션과 스티어링을 구성하는 모든 하드웨어의 세팅 목표는 타이어가 가급적 노면위에 잘 붙어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컨택트 패치가 전후좌우로 가능한 큰 힘을 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특히 서스펜션 구조물, 안티롤 바, 스프링, 댐퍼와 같은 하드웨어는 타이어 접지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이들 파트들이 조화롭게 설정되면 컨택트 패치 성능을 효과적으로 키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잘 못 사용하면, 오히려 접지력과 핸들링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타이어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하지만 쉽게 간과되는 또 다른 요소는 다름 아닌 드라이버입니다. 좋은 드라이버는 자동차를 부드럽게 컨트롤하는 기술을 잘 아는 드라이버 입니다. 모터 레이스 도중 발생하는 타이어 접지력 변화에 대하여 신속하지만 부드러운 드라이버의 대응은 고가의 고성능 하드웨어 만큼이나 랩 타임을 줄여주며, 당신이 그 드라이버라면 랩 타임 이득은 심지어 공짜입니다. 프로페셔널 드라이버에게 연습 시간을 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랩타임에 도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드라이버가 반복적 학습을 통해 타이어의 반응 특성과 성능 한계를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타이어가 물리적으로 낼 수 있는 힘은 유한합니다. 그리고 이 힘은 타이어가 과도하게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지고 예측도 불가능해집니다. 일반 자동차가 이 한계를 벗어나면 아주 운이 좋아야 교통사고를 면할 수 있습니다. 레이스 카의 경우 타이어가 가능한 큰 힘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이를 위해 드라이버는 타이어 접지력 한계를 학습해야 합니다.



탁자위에 종이를 놓고 그 위에 물 컵을 둔 상태에서 종이를 서서히 당기면 물 컵은 종이와 함께 끌려오게 되고 이때부터는 종이를 점점 더 빠르게 당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종이를 잽싸게 당기면 물 컵은 제자리에 있고 종이만 쏙 빠져 나옵니다. 같은 물 컵, 같은 종이, 같은 탁자인데도 우리가 목격하는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자동차에서 종이는 타이어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드라이버가 스티어링 휠을 급격하게 조작하거나 브레이크를 격하게 밟으면 타이어의 미끄러짐이 과도해져 접지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자동차의 운동은 이때부터 드라이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저 관성이라는 운명에 맡겨집니다. 힘의 크기나 방향을 바꾸는 것을 물리학에서는 저크(Jerk)라고 부릅니다. 동일한 차, 동일한 타이어, 동일한 도로라면 저크를 일삼는 드라이버는 그렇지 않은 드라이버보다 타이어의 접지력을 더 많이 탕진하고, 더 위험한 인물입니다. (저크를 일종의 기술로 사용하는 랠리 드라이버들은 이 범주에서 제외하겠습니다)



부드러운 드라이빙은 자동차의 핸들링 성능을 향상 시키는 가장 싸고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가속, 감속, 방향 전환 시 저크를 일삼는 드라이버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레이스 카를 싸구려 소형차 수준으로 전락시킬 수 있습니다. 풋내기 레이스 카 드라이버들이 보이는 가장 보편적인 실수는 코너링 시 차의 머리 부분이 바깥으로 밀리는 언더스티어(Understeer) 입니다. 이 드라이버는 “이 빌어먹을 놈의 차는 턴 인(Turn-in) 구간에서 완전히 쓰레기구만.”하고 자동차 탓을 하겠지만, 어쩌면 그가 브레이크 포인트를 너무 늦게 잡는 바람에 브레이크를 너무 세게 밟을 수 밖에 없거나, 스티어링 휠을 너무 급하게 틀며 커브를 진입하기 때문에 차의 핸들링이 엉망으로 보일 뿐 자동차는 최선을 다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처럼 드라이버의 부드러운 컨트롤은 자동차의 접지력을 유지하는 데 대단히 중요합니다. 드라이버의 실수를 보완해주는 가장 진보한 하드웨어로 무장한 자동차라 하더라도 운전대를 마구 흔들어 대는 저키(Jerky) 드라이버가 탕진하는 접지력을 완벽하게 보상하지는 못합니다. 군더더기 없는 정확하고 부드러운 드라이빙은 타이어 접지력을 높여주고, 접지력이 높아지면 당연히 더 빨리 달릴 수 있습니다. 천문학적 연봉을 받는 톱 F1 드라이버들은 무척이나 ‘부드러운 남자’들입니다.



타이어의 접지력은 가속, 제동, 코너링 모두를 지배하기 때문에 일반 도로 위에서 가장 민첩하고 안전한 차는 접지력이 가장 큰 차입니다. 엔진의 파워와 드라이버의 실력이 동일하다고 가정하면 트랙 위에서 가장 빠른 차 역시 타이어의 접지력이 가장 큰 차입니다. 타이어는 그저 투박한 고무 덩어리가 아닙니다. 정체모를 타이어를 최저가로 구입했다고 마냥 좋아하기엔 타이어가 자동차의 안전과 성능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큽니다. 타이어의 중요성을 이렇게 늘어 놓았으니, 다음 편에선 F1 타이어 이야기를 좀 더 자세하게 풀어야할 것 같습니다.

"All views expressed here are the author's own and not those of his employer and do not reflect the views of the employer."
 

김남호 박사 sjlee@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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