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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카의 공기 역학 Part 1 - 우사인 볼트의 비밀

기사승인 2014.11.03  17: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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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 F1 팀의 퍼포먼스 엔지니어 김남호 박사
 
2013 년 가을 국제 물리학 학술지인 European Journal of Physics 에 무척 흥미로운 연구 결과 하나가 발표됩니다. 이 연구 논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 (Usain Bolt)’가 베를린 IAAF 챔피언십 100m 스프린트 경기에서 9.58 초의 세계 기록을 경신할 당시 레이스 측정 데이터를 근거로 그의 육상 능력을 물리학적으로 해석한 결과를 담고 있습니다. 이 연구자들은 연구에 사용한 수학 모델의 시뮬레이션 결과가 우사인 볼트의 레이스 측정 데이터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함을 보임으로써 연구의 신뢰성을 증명하였고, 이를 토대로 직관적인 데이터 관찰 만으로는 쉽사리 알아차리기 어려운 여러 재미있는 사실들을 밝혀냅니다.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발견은 그의 몸 근육이 경기 과정에서 퍼붓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 대부분이 정작 쓰여야 할 달리기 동작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소진되어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우사인 볼트가 달리기 동작에 소모한 에너지는 그의 몸 근육이 생성한 에너지 총량의 단 7.79% 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기막힌 사실을 듣고 나면 자연히 어딘가로 소진되어 버린 에너지 92.21% 의 행방이 궁금해 집니다.
 
 
 
이 연구는 증발해 버린 92.21% 의 에너지가 모두 우사인 볼트의 전력 질주를 방해하는 공기의 저항력을 극복하기 위해 소모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우사인 볼트는 키가 6피트 5인치 (약 195cm) 에 이르는 거구의 소유자입니다. 더군다나 육상 종목에는 체력적 편차를 조율하는 체급이라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우사인 볼트의 신체는 경쟁자들 사이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큰 돛을 단 배는 돛과 바람 사이의 접촉 면적이 넓기 때문에 작은 돛을 단 배 보다 바람의 영항을 많이 받습니다. 이 현상은 굳이 어떤 물리학 이론에 기대지 않더라도 쉽게 수긍되는 ‘원래 그러한’ 자연의 이치입니다.
 
 
우월한 체격으로 인해 사실상 경쟁자들보다 더 큰 돛을 이고 달려야 하는 우사인 볼트는 자연히 더 큰 공기의 방해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우사인 볼트의 디자인이 다른 경쟁자들의 그것에 비하여 공기 역학적으로 비효율적이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사인 볼트는 레이스 출발 후 단 0.89초 만에 3.5 마력의 파워를 쏟아 냅니다. 최고 속도 43.92 km/h 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고작 1.2초에 불과합니다. 우사인 볼트의 가속력은 지구 중력으로 인해 물체가 자유낙하하는 가속도에 육박합니다. 우사인 볼트는 비 효율적인 공기 역학적 디자인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으로 우월한 기계적 근력을 활용하여 이 공기 역학적 페널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있습니다.
 
 
어떤 물체를 흐르는 공기 속에 두면 이 물체는 반드시 공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합니다. 이 방해의 정도는 물체의 형상에 따라 크기를 달리합니다. 어떤 물체가 공기의 흐름을 방해하는 정도의 크기가 작을수록 우리는 이 물체가 ‘공기 역학적으로 더 효율적이다’ 라고 표현합니다. 어떤 물체가 띄는 공기 역학적 효율성의 크기는 통상 ‘저항 계수 (Drag coefficient)’ 라는 정량화된 수치로 표시될 수 있습니다. 물체의 고유 저항 계수가 작으면 공기의 저항을 적게 일으킴을 의미합니다. 큰 몸집으로 인해 공기의 저항을 많이 받는 우사인 볼트의 저항 계수는 경쟁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저항 계수의 정의를 이용하면 우사인 볼트가 공기를 뚫고 달리기 위해 얼마나 큰 저항력을 이겨내야 하는지도 대략적으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
 
 
우사인 볼트가 받는 공기의 저항력 = 0.5 X 공기 밀도 X 우사인 볼트 몸의 저항 계수 X 공기와 부딪히는 우사인 볼트 몸의 단면적 X 우사인 볼트가 달리는 속도의 제곱
 
 
몸의 저항 계수와 단면적은 신체 형태에 따른 고유한 값입니다. 만약 우사인 볼트에게 물렁한 추억의 ‘만득이 인형’ 처럼 몸의 형태를 자유 자재로 변형하는 능력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으나 그럴리는 전혀 없기 때문에 몸의 저항 계수와 면적은 상수에 가깝습니다. 트랙 위 공기 밀도도 이변이 없는 한 거의 일정합니다. 결국 그가 이겨내야 할 공기의 저항력은 오로지 그가 달리는 속도의 함수입니다.
 
 
달리지 않으면 속도가 0 이기 때문에 공기의 저항력은 전혀 발생하지 않습니다. 일상의 느린 걸음걸이 속도에서도 공기의 저항력은 거의 인식할 수 없을 만큼 작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일상에선 우리를 전혀 방해하지 않던 공기가 왜 우사인 볼트에게는 불공평할 정도로 큰 방해 요소로 작용하는 것일까요? 해답은 바로 속도에 붇어 있는 ‘제곱’ 항에 있습니다. 느린 속도에선 진공처럼 거의 방해하지 않던 공기는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여 저항력을 키우다 결국 젤리처럼 끈적해집니다. 출발 직후 속도를 키워가던 우사인 볼트는 최고 속도에 도달한 1.2 초 후부터 젤리처럼 끈끈한 공기 속에 갇히게 되어 아무리 에너지를 퍼부어도 겨우 젤리 속을 통과할 수 있을 뿐 더 이상 빨라지지 못합니다. 이 때가 바로 공기의 저항력과 그의 최대 근력이 평형을 이루게 되는 시점이고 이 평형 관계를 이용하면 우사인 볼트가 낼 수 있는 이론적 속도의 한계도 계산할 수 있습니다.
 
 
우사인 볼트가 받는 공기의 저항력 = 우사인 볼트의 근육이 낼 수 있는 힘의 최대치
 
전력을 다해 물체를 밀고 나갈 때 도달할 수 있는 공기의 최고 속도를 통상 ‘터미널 스피드’라고 부릅니다. 우사인 볼트가 터미널 스피드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몸의 크기와 형태, 공기의 밀도는 천하의 우사인 볼트라 하더라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가 터미널 스피드를 높이는 유일한 방법은 근육의 힘을 더 키우는 것입니다.
 
 
직선을 달리는 F1 카 공기 역학의 핵심은 지금까지의 설명에서 ‘우사인 볼트’를 ‘F1 카’로만 치환하면 됩니다. 우사인 볼트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F1 카의 터미널 스피드를 높이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엔진의 파워를 키우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F1팀 자신들이 원하는 출력을 뿜어내는 고성능의 엔진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사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하지만 독자적 엔진 개발을 위해 투입해야 하는 엄청난 자원과 비용, 위험 부담을 감안하면 독자 엔진 개발은 대부분의 F1 팀들에게 지속 불가능한 (Unsustainable) 해결책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F1 팀들은 공인된 F1 엔진을 구매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커스텀 엔진이 아니기에 공급받는 엔진에는 표준화된 성능이 있고 파워 튜닝에도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F1 카는 엔지니어의 손을 거쳐 탄생하는 기계이기 때문에 터미널 스피드를 인위적으로 향상시킬 여지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엔진의 출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면 F1 카가 공기의 저항을 최대한 적게 받도록 디자인하면 됩니다. 물론 F1 카의 공기 역학 디자인 과정 역시 ‘만득이 인형’을 주물럭 거리는 것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F1 카의 디자인은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 많은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스케일 모델을 사용한 실험을 거쳐 조금씩 다듬어 집니다.
 
 
자연은 저항 계수와 단면적이 작은 자동차 디자인일 수록 동일한 엔진의 파워에서 더 큰 최대 속도를 허락합니다. ‘공기의 저항이 가장 작은 디자인’이란 공기가 차체의 표면과 차체 주변의 빈 공간을 타고 가장 잘 흐를 수 있는 디자인을 말합니다. 공기의 흐름이 어떤 경계와 충돌하면 반드시 소용돌이가 생기며 이는 레이스 카의 직진 성능을 방해하는 큰 장애 요소입니다. 직선 주로에서 빠른 F1 카를 만들기 위한 디자인의 목표는 직진 시 발생하는 공기의 소용돌이를 최소화하거나 필요한 곳으로 유도하고, 공기가 차의 꼬리 부분까지 최대한 부드럽고 막힘 없이 흐를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F1 공기 역학 엔지니어들은 부착물이 허용된 F1 카의 각 부위에 윙렛이나 플랩을 부착하여 공기의 흐름을 원하는 경로로 유도합니다. 예를 들어, 앞 날개의 양 옆 판은 공기와 앞 바퀴와의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기의 흐름을 굴절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시원한 공기가 계속 공급되어야 하는 차량 부위도 있습니다. 고열에서 작동하는 브레이크 패드는 과열 시 급격한 산화가 진행되어 제동력이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이 때문에 모든 바퀴에는 시원한 공기를 유입시켜 패드를 냉각하기 위한 덕트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앞 날개의 특정 부위는 브레이크 덕트로 가는 공기길을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엔진의 열을 식히기 위한 차체 양 옆의 라디에이터 구멍과 엔진에 공기를 공급하는 운전석 상단의 에어박스에도 반드시 적절한 양의 공기가 지속적으로 유입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 윙렛과 플랩의 위치, 각도, 형태가 적절하게 설계됩니다. 뒷 날개에는 공기 저항력 감소 시스템 (Drag reduction system; DRS) 이란 것도 달려 있습니다. 용어가 다소 거창하게 들리지만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창문을 열어 바람을 통과시키듯 그저 뒷 날개의 플랩을 열어 공기의 저항을 줄여주는 장치입니다. DRS 장치를 이용하면 공기의 저항을 순간적으로 줄일 수 있어 추월이 용이해 집니다.
 
 
내 차의 꼬리를 떠나는 공기를 그대로 흘려 보내는 것도 F1 에서는 큰 손해입니다. F1 에서는 윗물을 더럽혀 아랫물을 마시는 사람이 피해를 보게 하는 짓을 공공연히 합니다. 나를 거친 과거의 공기는 내 뒤를 따르는 차량이 이어 받게 됩니다. 흐름이 균일하지 않고 난류가 심한 공기를 F1 에서는 ‘더러운 공기 (Dirty air)’라 부르고 이 오염된 공기는 그렇지 않은 공기에 비해 더 큰 공기 저항을 일으킵니다. 더러운 공기는 내 차를 바짝 추격하는 뒷 차를 교란하여 추격을 방해하는데 유용하게 쓰입니다. 이를 위해 F1카의 뒷 날개는 공기가 가급적 더 많은 난류를 발생시키도록 디자인됩니다.
 
 
당신은 경쟁 팀들 보다 공기의 저항이 훨씬 적은 F1 카 디자인을 완성하였고 그 결과 모든 팀 중 최고 속도가 가장 높은 F1 카를 만드는 데도 성공하였습니다. F1 레이스 승리를 위한 해법은 완성된 것일까요? F1 레이스가 ‘정해진 직선 거리를 누가 더 빨리 주파하는가’를 겨루는 ‘드래그 레이스 (Drag race)’였다면 당신은 이른 축배를 들어도 좋습니다. 스티어링 휠을 중립 상태로 유지한 상태에서 스로틀 페달을 끝까지 밟고 긴 직선 도로를 달리는 드래그 레이스는 우사인 볼트의 100 m 스프린트와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드래그 레이스는 엔진의 파워가 크고 공기의 저항을 덜 받는 디자인의 차가 무조건 이기는 게임입니다.
 
 
레이스 카의 직선 성능은 엔진의 출력이 클수록 높아지기 때문에, 트랙의 전력 질주 구간은 ‘엔진의 출력이 아쉬운 구간’이라 해서 Engine Limited Section (ELS) 라고 부릅니다 (아래 그림에서 검은색으로 표시된 구간). Engine Limited Section 에서 빠른 차를 가졌으니 당신이 레이스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F1 그랑프리 레이스는 직선과 곡선이 혼재된 고난이도 문제이기 때문에 곡선 구간에서의 레이스 카 성능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그 해답은 아직 반 밖에 완성되지 못한 셈입니다.
 
 
드라이버의 임무는 트랙의 모든 구간에서 레이스 카를 가능한 가장 빠른 속도로 운전하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임무가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는 레이스 카의 성능이 직선과 곡선에서 전혀 다른 역학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직선 구간으로 대표되는 Engine Limited Section 의 끝은 반드시 곡선 구간으로 이어집니다. 쉬운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많은 차들이 신호를 기다리며 동서남북 줄지어 서 있는 사거리 교차로에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은 상태로 고속으로 진입하여 우회전을 시도하는 것은 자살 행위에 가까운 위험 천만한 행동입니다. 이 경우 타이어가 미끄러지면서 대기하고 있던 맞은편의 차를 덮치거나 차가 미끄러지기도 전에 전복 (Roll-over)될 수 있습니다.
 
 
차가 전복되는 상황을 잠시 논외로 하면, 곡선 구간을 빠르게 통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큰 엔진의 출력이 아니라 빠른 속도에서도 타이어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지탱할 수 있는 더 큰 타이어의 접지력입니다. 급한 곡선 구간을 미끄러지지 않고 통과할 수 있는 레이스 카의 최고 속도는 전적으로 타이어의 접지력 한계에 의해 결정됩니다. 급한 곡선 구간을 고속으로 통과하는 레이스 카는 보통 엔진의 최대 출력에 도달하기 훨씬 이전에 타이어 접지력의 한계치에 근접하게 되고 자칫 잘못하여 이 접지력의 한계를 넘어서면 차는 균형을 잃고 미끄러지기 시작합니다.
 
 
요컨데 레이스 카가 직선 구간에서 전력 질주를 마치고 곡선 구간에 접어드는 경우, ‘엔진 출력을 최대로 한 상태에서 레이스 카를 직선으로 안정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찾는 문제를 풀던 레이스 드라이버는 이제 ‘가능한 타이어의 접지력 한계를 넘어서지 않고 곡선을 통과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를 찾는 문제로 바꿔 풀어야 합니다. 엔진의 최대 출력보다는 타이어의 접지력이 레이스 카의 최고 속도를 지배하는 트랙의 곡선 구간을 우리는 ‘타이어의 접지력이 아쉬운 구간’이라 해서 Grip Limited Section (GLS) 이라고 부릅니다 (윗 서킷사진에서 흰색으로 표시된 구간).
 
 
현재 F1카는 직선 구간 (Engine Limited Section)에선 눈부신 터미널 스피드를 자랑하는 명품일 수 있지만, 곡선 구간 (Grip Limited Section) 성능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검증된 바가 전혀 없는 위험한 미완성품에 불과합니다. 쓸만한 F1카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F1의 공기 역학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All views expressed here are the author's own and not those of his employer and do not reflect the views of the employer."
 

라이드매거진 sjlee@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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