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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호의 F1 스토리 PART 13 - F1 카의 지능과 F1 드라이버의 손가락

기사승인 2014.09.24  16: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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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F1 카는 의심의 여지 없이 현존하는 주행용 자동차 중 운전과 조작이 가장 까다롭고 복잡한 자동차입니다. ‘자동차 운전이라는 기능이 기껏해야 두 손으로 스티어링 휠을 움직여 차의 방향을 바꾸고 두 발을 이용하여 차의 속도를 조절하는 지극히 반복적인 움직임인데 F1 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이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지만, 사실 F1 카의 운전과 조작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난이도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렵고 복잡합니다.

 

 

모터 레이스는 정해진 코스를 나 홀로 달리는 크루징(Cruising)이 아닙니다. F1 레이스는 스무 대가 넘는 F1 카들이 비좁다고 느껴질 만큼 제한된 폭의 트랙 위에서 손톱만큼의 양보도 없이 시속 수백 킬로미터의 속도로 뒤엉켜 달리는 이벤트입니다. F1 드라이버는 차가 멈추어 서기 전까지 스티어링 휠을 움직이는 팔과 풋 페달을 밟는 다리 근육에서 단 한 순간도 힘을 풀 수 없습니다. 행여라도 핸드휠을 놓치기라도 하는 날엔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경쟁자들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대형 사고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또 드라이버는 피트 월 (Pit wall)의 엔지니어가 무전을 통해 전달하는 정보나 드라이버 스스로 오감을 통해 습득한 피드백을 바탕으로 차의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세팅을 계속 변경해야 합니다. F1 카를 그저 움직이고 서게 하는 단순 운전은 드라이버의 팔과 다리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레이스 컨디션에 F1 카가 살아있는 동물처럼 적응할 수 있도록 지능을 불어넣는 것은 다름 아닌 드라이버의 손가락입니다.

 


F1 드라이버의 손가락이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는 기어 변속과 클러치 조작입니다. 
핸드휠의 뒷면에는 보통 네 개 이상의 플래피 패들 (Flappy Paddle)이 존재합니다. 사용 가능한 여러 개의 플래피 패들 중 두 개의 패들에 기어 업/다운 시프트 기능이 연결됩니다. 최근 들어 스포티한 양산차 모델에 많이 적용되는 기어 변속용 패들 시프트가 이와 동일한 장치입니다. 어느 패들을 기어 변속에 사용할 것인지는 순전히 드라이버의 취향에 따라 결정됩니다.

 

 

대부분의 드라이버는 업/다운 시프트를 좌우에 분리 배치하여 한 쪽 손은 업 시프트만, 다른 쪽 손은 다운 시프트만 맡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업/다운 시프트 모두를 좌나 우 어느 한 쪽으로 배치하여 한 손으로만 업/다운 시프트 조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다른 한 손은 좀 더 섬세한 컨트롤을 위해 자유롭게 두기를 원하는 드라이버도 있기 때문에 각 패들의 기능 배치는 이 장치의 유일한 VIP 고객인 드라이버의 기호에 맞게 배치됩니다.

F1 카에는 8단 시퀀셜 기어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시퀀셜 기어는 모터 사이클에 주로 사용되는 변속 방식으로 기어 변속을 순차적으로만 할 수 있는 기어링 방식을 지칭합니다. 일반적인 매뉴얼 변속기의 경우 1단에서 2단을 거치지 않고 바로 3단으로 변속이 가능하지만 시퀀셜 기어의 경우 반드시 2단을 거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시퀀셜 기어를 7단에서 2단으로 감속하려면 반드시 6-5-4-3 단을 순차적으로 거쳐야 합니다. 아울러 풀 오토매틱 기어 박스를 베이스로 하는 양산차의 패들 시프트 시스템과는 달리 F1 카의 기어 박스는 본질적으로 동력의 연결과 차단이 기계적인 클러치 플레이트의 마찰을 통해 이루어지는 수동 변속기 입니다.

그렇다면 F1 카에도 클러치 페달이 어딘가에 있어야 합니다. F1 카의 클러치 역시 풋 페달이 아닌 핸드 휠 뒷면의 플래피 패들로 조작합니다. 앞서 설명한 기어 업/다운 시프트 패들을 제외한 여분의 패들이 클러치 컨트롤에 배정됩니다.

 

 

클러치 조작에 사용할 패들의 선택에도 드라이버의 취향이 적극 반영됩니다. 보통 좌우 각 하나 씩, 두 개의 패들이 클러치 컨트롤에 배정되며 이 둘은 정확하게 동일한 클러치 차단 기능을 합니다. 다시 말해 둘 중 어느 한 쪽 패들만 당겨도 클러치를 열어 동력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기능의 손잡이를 굳이 양쪽에 두는 이유는 오로지 더 빠른 스타트를 위한 것입니다.

일반 수동 변속기 차량의 경우 정지 상태에서 차를 출발 시 ‘반 클러치’를 사용합니다. 차가 정지한 상태, 즉 차가 움직이지 않으려는 관성이 크고 엔진의 토크가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클러치 페달을 밟고 있던 발을 갑자기 떼면 갑작스런 클러치 마찰 때문에 순간적으로 엔진 드라이브 샤프트가 정지하게 되고, 엔진의 회전력이 이 힘을 이기지 못하면 몇 번의 딸꾹질 후 엔진이 멎어 버립니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엔진 스톨 (Engine Stall)’ 이라고 부릅니다.

 

 

수동 차량으로 운전을 배운 독자들이라면 초보시절 엔진 스톨로 진땀을 흘렸던 경험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소위 ‘반 클러치’를 사용하면 클러치 마찰판들이 계속 미끄러지며 회전하기 때문에 마찰판의 마모가 심해지고 엔진 동력의 일부가 손실되지만, 클러치의 마찰에도 엔진 드라이브 샤프트가 잠기지 않기 때문에 시동을 꺼뜨리지 않고 자동차를 출발시킬 수 있습니다. 일반 차량의 경우 적당한 반 클러치 위치는 드라이버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가속 페달을 약간 밟은 상태에서 클러치 페달을 슬금슬금 떼다 차가 꿈틀대기 시작하면 속도가 붙을 때 까지 클러치 페달 위치를 고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반 클러치의 공식입니다. ‘이쯤에서 멈추시오!’ 하는 외부의 도움이 없으니 운전자가 반 클러치 감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적지 않은 연습과 적응 기간이 필요합니다.

 

 

반면 F1 레이스에서 빠른 스타트는 레이스의 결과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스타트 시 완벽한 ‘반 클러치’ 감을 찾는데 허비할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개의 클러치 패들이 사용됩니다. 이제 그리드에서F1 카를 출발시켜 보겠습니다.

 

 

1. 스타트 세팅을 선택합니다. 이 세팅은 스타트에 쓰일 대략적 클러치 바이트 위치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바이트 위치가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2. 좌측 클러치 패들을 반 정도 쥔 상태에서 우측 클러치 패들을 완전히 당깁니다. 꽉 쥔 우측 클러치 패들 덕분에 클러치는 완전히 열린 상태가 됩니다.

3. 1 단 기어를 넣습니다.

4.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습니다.

5. 출발 신호가 떨어지면 브레이크 풋 페달과 우측 클러치 패들을 동시에 놓습니다.

6. 반 정도 쥐고 있던 좌측 클러치 패들은 그대로 유지하다가 차가 엔진 스톨(Engine Stall) 없이 출발한 후 완전히 놓습니다. 일종의 반 클러치인 셈입니다.

 

 

차가 무리 없이 그리드를 벗어난 이후부터 기어 변속은 클러치 패들 조작 없이 기어 업/다운 시프트 패들 만으로도 가능합니다. 문제는 최적의 클러치 바이팅 포인트를 찾는 것입니다. F1 엔진에는 Anti-Stall 시스템이라는 예민한 장치가 있습니다. 엔진이 과부하를 받는다 싶으면 클러치를 열어 버려 시동이 꺼지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입니다. 클러치 바이팅 포인트가 너무 얕으면 동력 전달 효율이 낮아 스타트가 느려집니다. 클러치 바이팅 포인트를 무리하게 잡으면 Anti-Stall 시스템 때문에 차가 꿈쩍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레이스 스타트는 잘 하면 단번에 순위를 여러 단계 끌어올리는 기회가 되지만, 동시에 아주 사소한 클러치 조작 실수만으로도 큰 댓가를 치러야 하는 위험 요소입니다. F1 레이스 스타트를 유심히 살펴보면 매번 눈에 띄게 실수하는 드라이버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스티어링 핸드휠 뒷면에서 벌어지는 ‘숨쉬기’ 만큼 기본적인 조작에 불과합니다. F1 드라이버가 감당해야 할 더 중요한 임무는 시시각각 변하는 레이스 컨디션에 차를 동물처럼 적응시키기 위해 핸드 휠 앞면에 어지럽게 배치된 버튼들을 이용하여 세팅을 변경하는 일입니다.

현대 F1 카의 스티어링 휠은 F1 카의 중추 신경과도 같습니다. F1 카에는 오직 드라이버 만이 통제할 수 있는 수십 가지의 파라미터가 있습니다. 피트 월과 팀의 헤드쿼터에 있는 엔지니어들에게 실시간으로 차의 상태에 대한 실시간 데이터 스트림이 제공되기는 하지만 이는 차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것일 뿐, 디퍼렌셜 세팅, 연료와 공기의 혼합 비율, 엔진 토크 맵 등 차의 직접적인 성능 변수는 차에 탑승한 드라이버 만 제어할 수 있습니다.

 

 

변경이 가능한 F1 카의 여러 세팅은 레이스 중 여러차례 바꿀 수 있습니다. F1 드라이버는 시선을 트랙에 두고 양 손은 핸드 휠을 잡을 상태에서 손가락의 움직임 만으로 다양한 세팅 변경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F1 카의 작은 스티어링 휠에는 스무 개 이상의 버튼, 스위치, 다이얼, 심지어 작은 LCD 디스플레이까지 집약되어 있습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많은 이 버튼들은 대체 어떤 용도에 사용하는 것일까요?

 

 

위 사진은 이번 시즌 자우버 C33 에 사용되고 있는 스티어 핸드휠입니다. 각 팀들은 자신들의 정보가 노출되는 것을 대단히 꺼리지만 자우버 팀은 핸드휠의 이모저모를 팬들에게 비교적 상세하게 공개한 바 있습니다. 각 팀의 핸드휠은 디자인에 있어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 보았을 때 유사점이 많기 때문에 자우버가 공개한 정보에 약간의 설명을 더하여F1 드라이버가 손가락으로 제어하는 이모저모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핸드휠을 양손으로 움켜쥔 상태에서 왼손 엄지와 검지 만으로 조작할 수 있는 버튼과 스위치는 상단부터 아래 방향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1. DRS (공기 저항력 감소 시스템) 버튼 : 좌측 상단 뒤에 숨어있는 이 버튼을 누르면 지정된 직선 구간에서 뒷 날개의 플랩을 열어 공기가 무사 통과하게 함으로써 공기 저항력을 감소시킵니다.

2. 노란색 N 버튼 : 1 단이나 2 단 기어에서 중립으로 단번에 변속시켜 줍니다.

3. 검정색 BRKBAL (Brake Balance) 로터리 스위치 : 스위치의 다이얼을 돌려 전후 브레이크의 발란스 (전후 브레이크 제동력 비율)를 큰 폭으로 조절합니다.

4. 검정색 Box 버튼 : 드라이버가 피트에 들어가고자 하는 의사를 엔지니어에게 표시합니다.

5. 파란색 S2 버튼 : 빈 버튼으로 필요에 따라 임시 기능을 링크시킬 수 있는 예비 버튼입니다.

6. 흰색 10- 버튼 : 핸드휠 중앙 하단에 있는 다용도 (Multi-Function) 로터리 스위치로 선택된 모드의 세팅을 변경하거나 스킵하는 데 사용합니다.

7. Entry 로터리 스위치 : 스위치의 다이얼을 돌려 코너 입구의 난이도에 따라 디퍼런셜 세팅을 변경합니다.

8. 오렌지 BRK- 버튼 : 이 버튼을 누르면 로컬 브레이크 발란스 세팅을 무시하고 프로그램 된 기본 브레이크 발란스 세팅으로 돌아갑니다.

9. 남색 BBal – 버튼 : 브레이크 발란스를 미세하게 낮춥니다.

10. 흰색 ACK (Acknowledge) 버튼 : 시스템 세팅을 변경하였음을 엔지니어에게 알립니다.

11. 이외에 각 버튼 근처에서 작동 상태를 알려주는 작은 LED 램프들이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핸드휠을 양손으로 움켜쥔 상태에서 오른손 엄지와 검지 만으로 조작할 수 있는 버튼과 스위치는 상단부터 아래 방향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12. 빨간색 PL (Pit Limiter) 버튼 : 피트 레인에 진입 시 이 버튼을 누르면 엔진이 피트 레인 제한 속도 80 km/h 를 넘지 않도록 제어됩니다.

13. SOC (State of Charge) 로터리 스위치 : 에너지 회수 장치 (ERS)의 에너지 저장 장치의 충전, 방전 모드를 제어합니다.

14. 검정 R (Radio) 버튼 : 엔지니어와 라디오 통신 시 사용합니다.

15. 오렌지 S1 버튼 : 파란색 S2 버튼과 마찬가지로 임시 기능을 링크시킬 수 있는 예비 버튼입니다.

16. 흰색 1+ 버튼 : 핸드휠 중앙 하단에 있는 다용도 (Multi-Function) 로터리 스위치로 선택된 모드의 세팅을 변경하거나 스킵하는 데 사용합니다.

17. Pedal 로터리 스위치 : 가속 페달의 반응 특성을 결정하는 페달 맵을 변경하는 데 사용합니다.

18. 녹색BRK+ 버튼 : 이 버튼을 누르면 좌측 상단 다이얼로 설정한 로컬 브레이크 발란스 세팅으로 돌아갑니다.

19. BBal + 버튼 : 브레이크 발란스를 미세하게 높입니다.

20. 검정색 OT (Overtake) 버튼 : 추월이나 방어 시 이 버튼을 누르면 순간적으로 고성능 엔진 맵이 선택되어 엔진 파워가 향상됩니다.

21. 마찬가지로 각 버튼 근처에 작동 상태를 알려주는 작은 LED 램프들이 보입니다.

 

 

중앙 하단에는 여러 가지 다이얼 스위치가 위치하는 데 이들은 긴박한 레이스 도중 사용하기 보다 세션 시작 전 차의 세팅을 변경하는 데 사용됩니다.

 

22. IGN (Ignition) 로터리 스위치 : 엔진의 점화 타이밍을 조절합니다.

23. PREL (Preload) 로터리 스위치 : 디퍼런셜의 예압 토크를 조절합니다.

24. 빨간색 Oil 버튼 : 보조 탱크로부터 메인 탱크로 오일을 급유합니다.

25. MFRS (Multi-Function 로터리 스위치) : 이 다이얼을 돌려 다음과 같은 다양한 시스템 모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기본 시스템 설정 (DIAG), 엔진 성능 (PERF), 엔진 회전 리미터 (ENG), 공기-연료 혼합 비율 (MIX), 터보-컴브레서 모드 (TURBO), 코너 탈출 디퍼런셜 설정 (VISCO), MGU-K 에너지 회수 한계 (BRK), MGU-K 부스트 한계 (BOOST), 대시 보드 옵션 (DASH), 크루즈 컨트롤 (CC), 기어 시프트 타입 (SHIFT), 클러치 바이트 포인트 오프셋 (CLU).

26. 검정색 BP (Bite Point) 버튼 : 클러치 바이트 포인트 최적화를 시작합니다.

27. Tyre 로터리 스위치 : 차에 장착된 타이어의 종류를 ECU에 입력합니다.

28. Fuel 로터리 스위치 : 연료 소모율을 조절합니다.

 

 

F1 드라이버는 두 시간의 레이스 동안 트랙 위를 고속으로 달리고 경쟁 차들을 피해 가면서 지금까지 설명한 버튼과 스위치들을 조작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F1 드라이버는 피트 월의 엔니지어가 무전으로 전달하는 정보에 귀를 항상 열어두어야 하고, 때로는 대시보드에 표시되는 데이터까지 곁눈질로 확인해 가며 차량의 상태를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일반 도로 주행 중 운전자가 라디오 채널을 변경하거나 핸드폰 통화를 하는 정도로도 운전자의 집중력이 음주 상태 만큼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F1 드라이버에게 요구되는 집중력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많은 정보와 기능을 드라이버에게 제공하는 것이 항상 유리한 것은 아닙니다. F1 드라이버도 인간이기 때문에 동시에 다루어야 할 정보의 양이 처리할 수 없을 만큼 과도해지면 집중력이 분산될 수 밖에 없습니다. 몇해 전 팀 라디오로 말을 걸어오는 레이스 엔지니어를 향해 ‘날 내버려 둬, 내가 뭘 해야하는지 알고 있어!(Leave me alone. I know what I am doing!)’ 이라고 쏘아붙인 한 F1 드라이버의 유명한 외침은 집중력을 유지하려는 뇌의 본능적 반응이었을 것입니다. 또 핸드휠 인터페이스의 혼잡도가 높아지면 필연적으로 조작 실수의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 때문에 F1 디자이너들은 가급적 컴팩트한 핸드휠 디자인에 꼭 필요한 버튼 기능만을 배치하려고 노력하며, 핸드휠의 유일한 사용자인 드라이버의 조작 실수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드라이버의 의견을 설계에 적극 반영합니다.

 

 

이번 시즌 각 팀은 비교적 작고 단순한 디자인의 기존의 핸드휠과 4.3 인치 LCD 디스플레이가 부착된 신형 핸드휠 중 자신들의 차에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핸드휠 디자인을 선택하였습니다.

 

부피가 큰 LCD 디스플레이 대시 보드를 사용하는 신형 핸드휠은 구형 핸드휠에 비해 중량이 약 300 ~ 400g 무겁습니다. 출전 차량의 패키징이 비교적 무거운 팀들은 규정된 차량의 최소 중량에서 단 1g의 중량 초과도 아쉽기 때문에 일부러 구형 핸드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차의 무게를 낮추기 위함이기 보다는 LCD 디스플레이가 차지하는 부피와 넓이로 인해 증가하는 핸드휠 셋의 관성 모멘트 (Moment of Inertia)를 줄이려는 목적이 더 큽니다. 관성 모멘트가 증가하면 드라이버가 핸드휠을 돌리기 위해 더 큰 팔 힘을 더 써야하기 때문입니다.

 

 

핸드휠의 넓이가 늘면 드라이버의 시야가 줄어든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게다가 신형 대시보드 도입에 대한 절실함이나 필요성이 크지 않았습니다. 마치 최신 핸드폰 기종을 권하는 판매 직원을 앞에 두고 ‘지금 쓰는 구형 핸드폰도 그럭저럭 불편없이 쓸만한데 뭐... 최신 기종에는 굳이 내가 쓰지도 않을 기능들이 추가되어 가격 만 비싼 건 아닐까?’하고 망설이는 상황을 생각하면 적절할 것입니다.

 

반면 패키징이 비교적 가벼운 팀들은 LCD 디스플레이가 달린 신형 핸드휠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앞서 언급한 단점들이 있지만 확장된 디스플레이 기능 덕분에 드라이버는 피트월 엔지니어의 꼼꼼한 도움 없이도 파워 유닛의 상태를 비교적 정확하게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시즌 중국 그랑프리에서 한 차량의 텔레메트리 시스템 (차의 상태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엔지니어에게 전송하는 장치)이 불능 상태가 되어 드라이버가 엔지니어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지만 새로 도입된 이 LCD 디스플레이 덕분에 드라이버 스스로 차의 상태를 부분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었고, 자칫 최악의 결과로 끝나버릴 수 있었던 레이스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최근 F1 레이스를 주관하는 FIA는 팀 라디오 사용에 강력한 제제를 가할 것이라는 얄궂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F1 팀들은 드라이버가 원하는 정보를 팀 라디오를 통해 제한없이 교환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제한이 가해집니다. 이 제제 조치에 따르면 차의 성능 향상을 위한 세팅 조정이나 연료 사용량 등의 정보를 더 이상 팀 라디오로 드라이버에게 알려 줄 수 없습니다.

 

 

갑작스럽게 발표된 이 결정에 모든 F1 팀들이 당황하기는 마찬가지겠지만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당사자는 앞서 설명된 이유로 업그레이드를 미뤄온 구형 핸드휠 사용 팀들입니다. 이미 신형 핸드휠을 도입한 팀들은 팀 라디오 사용에 제한이 가해진다 하더라도 파워 유닛의 상태 등의 정보를 드라이버 스스로가 모니터링할 수 있는 대체 수단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당황할 것입니다.

 

이정도 상황이면 아무 미련 없이 최신 기종으로 갈아 타야할 심각한 기기 변경 사유입니다. 바야흐로 F1에 기기 변경의 거센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All views expressed here are the author's own and not those of his employer and do not reflect the views of the employer."

라이드매거진 sjlee@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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