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장에선 클러치 페달의 필요성이 사라진지 오래로, 과거에는 자동변속기에 비해 수동변속기가 연비가 훨씬 높아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연비를 위해 수동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제는 자동의 연비가 수동 못지않게 우수해졌고, DCT 같은 형태의 변속기는 수동보다 훨씬 빠른 변속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젠 수동변속기는 소수의 마니아만이 선택할 정도여서 브랜드에서도 수동변속 자동차를 거의 내놓고 있지 않을 정도다.
혼다 CBR650R |
하지만 모터사이클은 조금 다르다. 일상보다는 취미의 영역이 강한 제품인 만큼 수동으로 변속하는 과정마저도 하나의 ‘재미’로 인식하기 때문에 자동변속기에 대한 수요가 드물고, 본격적으로 자동변속 기능의 제품이 본격적으로 투입되기 시작한 것이 혼다의 DCT로 아직 채 10년이 되지 않았으며, 야마하나 BMW도 이제 막 자동변속 관련 기능을 선보이고 제품에 막 투입하기 시작한 정도다.
혼다 CB650R |
이런 점은 초심자들이 모터사이클 시장에 진입하는 걸림돌이 된다. 신호가 바뀌어 출발해야 하는데 클러치 레버 조작을 잘못해 시동이 툭 꺼져버리고, 헬멧 속에서 진땀을 뻘뻘 흘리며 다시 시동을 걸어 간신히 출발하는 상황을 몇 번 겪다보면 기대감이 차게 식어버리기 마련.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클러치 레버 조작에 대한 질문을 자주 볼 수 있을만큼 초심자들에겐 꽤나 부담되는 요소가 바로 이 클러치 레버다.
신제품을 공개하는 혼다코리아 이지홍 대표이사(왼쪽)와 미즈노 코이치 상무 |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브랜드에서 제시하는 것들이 여럿 있는데, 대표적으로 혼다의 듀얼 클러치 트랜스미션이 있다. 자동차에 적용되는 것과 동일한 원리로, 변속 시점을 차량에 온전히 맡기는 자동변속으로 사용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수동으로도 변속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DCT 장착으로 인해 무게와 부피, 비용이 적잖이 늘어나기 때문에 일부 고배기량 모델에만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막 2종 소형 면허를 취득한 라이더가 고배기량 모델로 바로 입문하기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이런 라이더들을 위한 새로운 변속기술이 적용된 제품이 나왔다. 혼다는 지난 10월 29일 경기도 성남의 모빌리티 카페 더 고에서 혼다 CBR650R과 CB650R의 신제품을 출시했다.
혼다코리아 이지홍 대표이사는 인사말을 통해 “신제품에 적용된 E-클러치 시스템은 수동으로 클러치를 조작하지 않아도 출발이나 주행 중, 정지상태에서 시동이 꺼지지 않는다는 특성으로 초보자에게도 굉장히 유용한 시스템이다. 차량에 익숙해져서 클러치를 직접 조작하면 바로 수동으로도 전환된다. 이런 시스템이 자동과 수동을 오가는 시점 등 여러 면에서 이질감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직접 주행해보니 그런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며 “혼다의 기술은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닌, 소비자의 편리성에 도움을 주는 기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술이고, 그러한 정신이 듬뿍 담긴 모델이라고 소개하고 싶다”며 제품을 소개했다.
초심자에게 적격, E-클러치
이 두 제품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역시 E-클러치다. 전체적인 외관에선 기존 수동변속 모델과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지만, 딱 하나, 우측 엔진 커버의 형상이 조금 더 돌출된 형태로 바뀌었다는 차이가 있다. 바로 이것이 E-클러치 관련 부품들이 적용된 부분으로, 내부에는 2개의 모터와 몇 개의 기어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러한 부품들은 차량의 ECU 및 모터 컨트롤 유닛(MCU)와의 통신을 통해 변속 페달에 걸리는 하중을 비롯해 기어 포지션, 스로틀 개도, 엔진 회전수, 앞뒤 바퀴 속도, 클러치 접속 상태, 카운터 축의 회전수 등의 정보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필요에 따라 자동으로 모터가 작동해 클러치 개방 및 연결을 제어하게 된다.
클러치 레버가 있지만 사용하지 않아도 모든 변속이 가능하다는 것이 퀵 시프트와 다른 점이다 |
우선 중립 상태에서 키 온을 하면 MCU가 중립 기어를 인식해 클러치를 개방하고, 시동을 건 후 1단에서 출발할 때는 클러치 개방 상태를 유지하다가 라이더의 스로틀 조작에 맞춰 클러치을 얼마나 연결할지를 제어한다. 주행 중에는 라이더가 풋레버로 상단 변속을 할 경우 ECU는 퀵시프트와 마찬가지로 점화 및 분사를 제어하고 MCU는 반클러치 상태를 만들어 목표 기어로 변속 후 클러치 연결 과정에서의 충격을 줄인다. 하단 변속도 마찬가지로, ECU와 MCU를 통해 부드러운 하단 변속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완전 자동변속이 아닌, 시프트 페달을 이용해 직접 변속해야 한다 |
기존 변속 과정들은 수동변속기의 경우 클러치의 연결과 해제을 라이더가 직접 조작하기 때문에 조작이 미숙한 경우 변속 충격이 그대로 라이더에게 전달되고, 마찬가지로 퀵 시프터의 경우도 변속 과정에선 클러치를 잡아도 되지 않으나 적절한 타이밍에 변속하지 않으면 변속 직후에 충격이 운전자에게 전달될 수 있는데, E-클러치는 전자식으로 클러치를 제어하는 부분까지 더해지기 때문에 퀵 시프터보다 부드럽고 빠른 변속이 가능하면서 수동 변속의 재미를 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램프로 E-클러치 기능 작동 여부를 보여준다 |
작동 여부는 계기판의 클러치 모양 아이콘과 A가 조합된 램프를 통해 제어 상태를 알 수 있다. 클러치 레버를 직접 조작할 경우 램프가 꺼져 E-클러치 기능이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주는데, 클러치 레버를 조작하더라도 수 초 내로 클러치 레버 조작이 없다면 다시 E-클러치 기능이 작동하는 상태로 전환되어 클러치 조작 없이 변속할 수 있다.
E-클러치 장착 모델은 우측에 약간의 돌출부가 생기지만 정강이에 닿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
본격적인 시승이 아니어서 직접 주행은 할 수 없었지만 뒷바퀴를 띄워놓은 상태로 잠깐 시동을 걸어 직접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중립에서 1단을 넣는 과정부터 이후의 모든 변속 과정에서 클러치 레버를 조작하지 않아도 원활한 변속이 이루어졌다. 특히 1단 이후 출발 과정에서도 클러치 레버 조작이 필요없다는 점은 수동변속기에 익숙하지 않은 초심자도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부분. 다만 현재까지는 CB650 시리즈에만 적용됐는데, 이에 대해 혼다의 류자키 타츠야 E-클러치 개발담당은 “구조를 최대한 단순화해 사이즈를 줄이면 단가 또한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 향후 타 차종, 특히 쿼터급으로의 적용에 대해서도 개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CB650 시리즈가 먼저 발매된 국가에서 E-클러치 모델과 수동변속 모델의 선택 비중에 대해선 9:1에 달한다고 밝혀 혼다에서도 앞으로 출시할 주요 모델들에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으로 기대된다.
첫 번째 풀체인지, CB/CBR650R
CBR650R 전면부 |
CB650R 전면부 |
E-클러치의 도입이 상당한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이번 CB650 시리즈의 변화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 2019년 네오 스포츠 카페 콘셉트 도입 및 CBR650R을 처음 선보인 이후 맞이하는 첫 번째 완전변경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외관에서도 변화가 있는데, CBR650R은 헤드라이트 끝 부분의 눈매를 평평하게 다듬고 후미 형상을 뾰족하게 깎아 혼다 고유의 슈퍼스포츠 스타일을 계승했으며, CB650R은 원형의 주간주행등 형상을 동그라미 형태에서 상단이 열린 형태의 원형으로 바꾸고 측면 슈라우드 커버 및 후미부 디자인을 변경했다.
엔진은 649cc 수랭 4기통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95마력/12,000rpm, 최대토크 6.4kg·m/9,500rpm의 성능을 낸다. 신형에선 캠샤프트의 타이밍을 변경해 저-중속 회전대에서 토크를 향상시켰고, 시내 주행에서 클러치 조작의 편의를 위한 어시스트&슬리퍼 클러치, 온/오프가 가능한 혼다 셀렉터블 토크 컨트롤 등을 적용했다.
차체는 후방 프레임의 디자인 변경을 통해 424g을 경량화했으며, 탑브릿지는 알루미늄으로, 바텀 브릿지는 CB650R이 알루미늄을, CBR650R이 철을 사용해 특성에 맞춰 소재를 달리했다. 서스펜션은 앞에 쇼와 SFF-BP(Seperate Function Front fork Big Piston)를 역방향으로 장착해 하중 이동의 자유도를 높였으며 기존 대비 114g의 무게를 줄였다. 뒤에는 가압 싱글 튜브식으로, 10단계로 프리로드(예압) 조절이 가능해 상황에 따라 우수한 승차감을 제공한다.
계기판은 5인치 TFT 풀 컬러 디스플레이가 적용돼 우수한 시인성으로 주행 정보를 제공한다. 화면은 3개의 테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각각은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배경색을 흰색과 검은색 중 선택할 수 있다. 표시 내용이나 차량 설정 메뉴 조작을 위한 스위치는 최근 새롭게 도입한 4way 셀렉트 스위치로 보다 직관적인 조작이 가능하다. 또한 급제동 시 후행 차량에 위험한 상황임을 알리는 비상정지신호(ESS) 기능도 탑재하고 있다.
색상은 CB650R이 MT가 맷 블랙과 레드, E-클러치는 맷 블랙과 맷 그린, 펄 그레이로 선보이고, CBR650R은 MT와 E-클러치 사양 모두 레드와 맷 블랙으로 판매된다. 가격은 CB650R이 MT 1,188만원, E-클러치 1,248만 원이고, CBR650R은 MT 1,288만 원, E-클러치 1,348만 원이다. 혼다에서는 이번 CB650R과 CBR650R의 온라인 사전 계약이 1,900건을 넘겼으며, 실 계약도 1,850건에 달한다고 밝히며 내년 4~5월까지는 인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혼다의 E-클러치 적용 모델 출시가 모터사이클 시장에 상당한 충격을 불러오리라 생각한다. 특히 신규 라이더의 유입이 줄어가고 있음을 모두가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초심자들의 입문에 걸림돌로 작용할 만한 부분을 하나 덜어낸 만큼 이를 통해 유입되는 숫자도 적지 않으리라 본다. 다만 이번 CB650 시리즈에서 그치지 않고 E-클러치의 빠른 보급을 통해 쿼터급이나 125cc급 매뉴얼 모델에도 적용해 신규 유저들이 모터사이클에 부담을 덜고 접근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송지산 기자 song196@ridema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