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짐은 일찌감치 나타났다. 작년 야마하 유럽에서 야마하의 간판 모델이라 할 수 있는 YZF-R1의 생산을 중단할 예정이라고 밝혔을 때부터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다른 모델도 아니고 R1을 단종한다니, 라이더들의 항의가 빗발쳐 계획을 철회하긴 했으나, 레이스 전용 모델의 출시와 일부 환경규제 기준이 낮은 국가들에만 도로용 모델을 판매할 계획이라고 정정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 R1의 뒤를 누가 이을지는 불보듯 뻔했다. CP2 엔진 기반의 YZF-R7은 이미 출시되어 판매되고 있으니 다음으로는 최근 야마하에서 가장 밀고 있는 CP3 엔진, 890cc 3기통 엔진을 바탕으로 한 슈퍼스포츠 모델이 확정적이었다. 이미 많은 매체들을 통해 R1의 뒤를 이을 차세대 모델이 R9이라는 점이 야마하의 상표권 등록 등을 통해 공개가 예견되고 있는 상황에 지난 9월 말, 야마하 모터의 유럽법인과 미국법인의 유튜브 채널에 ‘새로운 시대의 도래’라는 제목으로 티저 영상이 공개됐다. 정확한 디자인이 공개된 것은 아니었지만 전체적인 실루엣이나 살짝살짝 공개된 일부 디자인은 누가봐도 풀페어링의 슈퍼스포츠 모델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상황. 그리고 예고된 10월 9일, 마침내 새로운 야마하의 슈퍼스포츠 YZF-R9이 공개됐다.
야마하의 선택과 집중
야마하는 MT-09를 처음 선보인 이후 뜨거운 반응을 얻자 탑재된 3기통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트레이서 9, 나이켄, XSR900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여왔다. 특히 XSR900의 파생모델인 XSR900GP를 통해 YZF-R9으로 이어지는 라인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을만큼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러한 CP3 엔진 중심의 라인업 구축은 그동안 야마하 제품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는데, 야마하는 과거 다양한 배기량의 제품군을 시장에 선보여왔으나 모든 모델이 성공한 건 아니었다. 올해 초 야마하 딜러 컨퍼런스 현장에 방문한 야마하 모터의 우에다 사토루 글로벌 CX 사업부장도 국내 미디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때 개성 넘치는 모델로 시장을 개척해나가자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고도 성공하지 못한 사례가 있어 안정성 있게 하나의 엔진으로 시리즈를 만들어가려는 분위기”라며 야마하 내부 상황을 전한 바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R9의 출시를 예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고, 다양한 소스들을 통해 개발중인 상황이 전해지며 기정사실화된 분위기에서 이번 공개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
여기에 의외의 소식 중 하나는 바로 호물로게이션의 변경이다. 월드 슈퍼스포츠 챔피언십이 기존에는 4기통 600cc 미만, 3기통 675cc 미만, 2기통 750cc 미만의 배기량 규정을 갖고 있었지만, 2025년부터 현재의 YZF-R6에서 YZF-R9으로 변경할 것이라는 해외의 모 레이스팀 관계자의 설명대로라면 이번 변경 역시 레이스 규정 변경에 따른 대응의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타 브랜드에서 현재 생산하는 미들급 슈퍼스포츠 모델들이 다 기존 규정보다 훌쩍 뛰어넘은 배기량의 엔진을 탑재하고 있는데, 브랜드의 이런 상황들까지 모두 고려해서 기존의 규정을 고집하는 대신 브랜드들이 참여하기 쉬운 새로운 클래스를 만들어 레이스를 진행해 기존 브랜드들의 참여를 계속 이어나가려는 의도도 엿볼 수 있다.
공기역학적 성능 강화
차량의 외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측면으로 날카롭게 뻗은 두 가닥의 날개, 윙렛(winglet)이다. 공기역학 성능 개선을 위해 모토GP 등 레이스는 물론이고 많은 브랜드들에서 양산 슈퍼스포츠 모델에 투입을 늘리고 있는 파츠인데, 야마하서는 이번 R9에 최초로 윙렛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다운포스를 높여 앞바퀴에 하중을 더함으로써 접지력을 높이는데, 윙렛만으로도 직선 주행 시 앞바퀴 들림은 6~7% 감소시키며, 전면부 스포일러와의 조합을 통해 코너링 시에 10%까지 늘어난다고 한다. 이러한 윙렛 뿐 아니라 차량 전반의 디자인을 공기역학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개발 과정에서 광범위한 풍동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최고속도 및 가속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차량의 크기는 전장 81.5인치(2,070mm), 전폭 27.8인치(706mm), 전고 46.5인치(1,181mm)이며 휠베이스는 55.9인치(1,419mm)다.
파워트레인은 890cc 수랭 3기통의 CP3 엔진으로, 어느 정도의 성능을 내는지에 대해 아직 밝히진 않았으나 기존 CP3 엔진이 최고출력 117마력/10,000rpm, 최대토크 93Nm/7,000rpm의 성능을 냈고 이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성능 수치는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6단 수동변속기에 3세대 퀵시프트 시스템과 어시스트 앤 슬리퍼(A&S) 클러치가 더해져 빠른 가속 및 안정적인 하단 변속으로 서킷에서 한층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프레임은 야마하 슈퍼스포츠를 상징하는 델타박스 스타일의 프레임이 적용되지만, 이번 R9를 위해 특별해 개발된 중력 주조 방식이 적용되어 비틀림 강성이나 종/횡방향 강성을 모두 높였다. 프레임의 무게는 9.7kg으로 역대 야마하 슈퍼스포츠 모델 중 가장 가벼우며, 이런 경량화 덕분에 전체 무게(공차 중량)이 195kg에 불과하다. 라이딩 포지션은 도로 주행과 트랙 주행을 모두 충족시키기 위해 개발되었고, 특히 핸들바에서 시트까지의 거리를 최적화하고 시트 높이를 830mm로 설정해 다양한 라이더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서스펜션은 모두 KYB 제품으로 앞 조절식 역방향 텔레스코픽 포크, 뒤 조절식 쇼크 업소버 구성이며, 앞뒤 모두 압축과 신장, 예압까지 전부 조절할 수 있는 방식이 적용됐다. 포크의 경우 완전히 새롭게 설계된 것으로, 각각의 포크 상단에 좌측은 압축을, 우측은 신장을 조절하는 레버가 달려있으며 고속과 저속에서의 설정이 모두 가능하다. 또한 오일이 포크 바닥으로 흘러더는 것은 방지해 실린더 압력을 최적화하는 베이스 밸브가 더해져 감쇠력에 대한 응답성이나 노면 피드백, 안정성 등을 향상시켰다. 브레이크는 브렘보 시스템을 적용해 앞에는 스타일레마 모노블럭 캘리퍼와 디스크를 좌우 양쪽으로, 뒤에는 싱글 디스크를 장착해 높은 제동력을 발휘하고 마스터 실린더 역시 브렘보 제품이 적용됐다. 또한 일관적인 제동력을 위해 앞에 320mm 대형 디스크를 적용하고 스테인리스 스틸 메시 호스를 더했다.
여기에 YZF-R1을 바탕으로 개발된 6축 관성측량장치(IMU)를 장착하고, 이를 통해 수집된 차량의 움직임 정보를 이용해 작동하는 슬라이드 컨트롤 시스템(SCS), 백 슬립 레귤레이터(BSR), 프런트 휠 리프트 컨트롤(LIF), 엔진 브레이크 관리(EBM) 등의 기능을 더해놓았고, 이러한 기능들은 야마하 라이드 컨트롤(YRC)를 통해 상황에 따라 엔진 출력 특성과 함께 한꺼번에 조절할 수 있으며 사용자 정의 모드도 2종을 제공한다. 또한 레이스 사용을 상정해 빠른 출발을 돕는 런치 컨트롤 시스템도 있으며, 트랙 주행 시 리어 ABS를 차단할 수도 있다. 그리고 도로에서의 장거리 주행를 고려해 3단 기어 40km/h 이상에서 활성화할 수 있는 크루즈 컨트롤 기능도 갖춰져 있다.
계기판은 5인치 TFT 풀컬러 디스플레이를 장착해 주행 정보를 높은 시인성으로 제공하고, 트랙 주행을 위해 랩타이머도 내장되어 있다. 또한 스마트폰을 블루투스로 연결해 전화 송수신이나 음악 재생은 물론이고 차량 설정을 변경할 수도 있는데, 내비게이션의 경우 기존 티맥스와 마찬가지로 가민의 앱을 사용해야 지원 가능하지만 국내는 지원하지 않으므로 사용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트랙 주행 시 관련 정보의 경우 Y-TRAC앱을 통해 랩타임 및 구간 별 기록, 기울기 각도, 엔진 회전수, 기어 위치, 속도, 스로틀 위치, 트랙션 컨트롤 등 차량의 정보들을 스마트폰을 통해 전달받을 수 있다. 또한 스마트폰 연동 시 서킷 주행 중 대시보드에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가상 피트보드 옵션도 제공한다고. Y-TRAC앱은 구독형으로 제공되며 무료 체험판으로 경험해볼 수도 있다.
이번 R9의 출시로 인해 아쉬움을 느끼는 사용자들은 “슈퍼스포츠는 4기통이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4기통도 나름의 재미와 특유의 맛이 있겠지만, 꼭 4기통이 아니어도, 오히려 4기통이 아니기에 색다른 재미와 맛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야마하에서 10년 이상 이어오며 성능과 품질을 입증받아온 CP3 3기통 엔진을 기반으로 한 만큼 충분히 만족시킬만한 재미를 경험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송지산 기자 song196@ridema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