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모터사이클은 단연 크루저라 할 수 있다. 오죽 인기가 높으면 크루저를 ‘아메리칸’이라고 칭할 정도니 말이다. 한때는 대중 브랜드에서도 미국 시장을 겨냥한 별도의 크루저 제품을 내놓을 정도로 미국의 크루저 사랑은 대단하다. 물론 이런 제품들도 원조집들의 기세를 꺾지 못하고 하나 둘 사라져 지금은 거의 볼 수 없지만.
미국 시장을 주름잡는 양대 크루저 브랜드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오래된, 미국 최초의 모터사이클 브랜드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 인디언 모터사이클이다. 1위의 자리를 차지하진 못했지만, 차별화된 라인업과 제품군으로 특별함을 보여주는 이 크루저 전문 브랜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왜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는 칭호를 얻게 된 것인지, 어떤 제품들을 만날 수 있는지 등 인디언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것을 살펴보았다.
격동의 역사
인디언 모터사이클의 창립자인 조지 M. 헨디 |
인디언 모터사이클의 창립자는 조지 M.헨디와 오스카 헤드스트롬이다. 1897년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세운 회사는 헨디 제조 회사(Hendee Manufacturing Company)라는 이름의 회사를 세웠고, 1901년 인디언의 고향인 미국 메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 첫 공장을 세우며 브랜드의 역사가 시작된다. 지금의 이름으로는 1923년에 바뀌었는데, 재밌는 건 당시엔 인디언 모터사이클에서 ‘R’이 빠진 인디언 모토사이클(Motocycle) 컴퍼니라는 이름으로 지금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모터사이클 브랜드가 그렇듯 시작은 자전거를 만드는 것이었지만, 여기에 엔진을 붙인 지금의 ‘모패드(mopad)’ 형태의 제품으로 전환했고, 판매가 늘어나며 회사는 점차 성장하게 된다.
공동 창립자이자 수석 엔지니어였던 오스카 헤드스트롬 |
물론 좋은 품질도 판매에 영향을 주지만,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역시 제품을 널리 알리는 것, 즉 홍보다. 이 홍보에는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인 오스카 헤드스트롬의 역할도 무시할수 없다. 그의 주 업무는 엔지니어링, 즉 제품 개발과 생산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1903년에는 직접 완성된 제품을 타고 뉴욕에서 스프링필드를 왕복하는 레이스에 참가해 당시 최고속도 기록인 56마일(약 90.1km/h)의 기록과 함께 우승, 제품을 미 전역에 널리 알리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라 1911년 맨섬 TT에서는 1, 2, 3위를 모두 인디언 모터사이클이 차지했고, 이 밖에도 각종 레이스에서 우승하는 등 세계적인 브랜드로 우뚝 서게 된다.
1929년 제작된 인디언 스카우트 |
브랜드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카우트는 1920년에, 치프는 1922년에 첫 선을 보였다. 스카우트는 610cc 엔진으로 시작해 740cc까지 배기량이 늘어났고, 이후 500cc 엔진의 포니 스카우트라는 모델도 추가됐다. 치프는 1,000cc로 시작해 1,200cc, 1,300cc까지 배기량이 점차 확대됐으며, 기본형으로도 137km/h의 당시 기준으로 무척 빠른 속력을 낼 수 있었는데 튜닝을 거치면 160km/h까지도 가능했다고.
여기저기 팔려다니며 브랜드의 정체성이 흐릿해지기도 했다. 인디언에서 발매됐던 미니 모터사이클 |
세계 2차 대전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인디언은 전후 극심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1930년에 인디언을 인수한 듀퐁 모터스는 인디언의 지분을 배수한 랄프 B. 로저스에게 운영권을 넘겼는데, 치프를 제외하고는 100cc나 220cc 등 저배기량 모델로 시장에서의 평판을 조금씩 잃기 시작했고, 결국 1953년 브룩하우스 엔지니어링에게 브랜드에 대한 권리를 넘기게 된다. 여기서도 스쿠터나 250cc 경량 자전거 등을 만들고, 로얄엔필드의 제품을 수입해 뱃지 엔지어링 방식으로 판매하는 등 정체성이 점차 흐려지기 시작한다.
폴라리스가 인디언을 인수하면서 브랜드의 정체성을 되찾게 된다 |
부침을 거듭하며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우려도 많았지만, 2011년 부활의 기회를 얻었다. 바로 빅토리 모터사이클을 제작하던 폴라리스 인더스트리에서 인디언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 폴라리스에 인수된 인디언은 2013년 봄 111큐빅인치(1,820cc)의 썬더스트로크 엔진을 공개했고, 여름에는 이를 탑재한 제품들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후 다양한 신제품들로 라인업을 확대해나가며 현재의 모습에 이른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
뉴질랜드인인 버트 먼로 |
‘세상에서 가장 빠른 모터사이클’이라면 보통 슈퍼스포츠 같은 모델을 떠올릴 것이고, 인디언의 역사에서 그런 모델이 나왔었나 싶겠지만, 이는 인디언이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뉴질랜드인인 버트 먼로가 자신의 스카우트를 ‘스트림라이너(최고속도 기록 도전을 위해 공기역학적 페어링을 설계해 차체 대부분을 덮은 모델)’로 개조해 달성한 기록이다. 모터사이클 판매원으로도 일했던 그는 최고속 달성에 대한 관심으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600cc 스카우트를 밤마다 개조하며 최고속도 기록에 대한 열정을 키워온다.
주행에 나선 버트 먼로 |
1962년 63세라는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최고속에 대한 열정에 감동해 이웃의 도움으로 경비를 마련, 미국을 방문해 AMA 본네빌 스피드 위크에 처음 참가해 850cc로 배기량을 늘린 자신의 모터사이클로 288km/h의 기록을 달성한다. 1966년 두 번째 도전에선 배기량을 다시 920cc로 늘렸지만 오히려 기록은 270km/h로 낮아졌는데, 마지막 도전이라 여겼던 1967년 배기량을 950cc까지 늘렸고, 결국 306km/h(비공식 331km/h, 이후 계산 오류가 발견되어 296km/h로 정정)의 기록으로 1,000cc 미만 모터사이클 최고속도 기록 달성과 함께 인디언 모터사이클 제품 중 최고속도 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관련한 내용은 2005년 영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을 통해 볼 수 있으며,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 역을 맡았던 안소니 홉킨스가 버트 먼로 역으로 열연한다. 열정을 위해 노력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인 만큼 자녀들과 함께 보기에도 좋다.
<인디언 모터사이클의 주요 모델>
- 치프테인
2014년 부활한 치프 시리즈 3종 중 현재까지 이어지는 유일한 모델로, 인디언에선 처음으로 전면부 페어링과 하드 새들백을 장착한 모델이다. 여기에 오디오 시스템과 블루투스 플레이어, TPMS, 전동식 윈드스크린 등의 편의장비가 적용됐다.
- 스카우트
역사적인 모델의 이름을 이어받은 모델로, 기존 치프 시리즈 대비 작은 1,133cc의 V트윈 엔진과 알루미늄 함금 프레임 등을 갖췄다. 인디언에서 엔트리를 담당하는데, 기존 크루저와는 다른 스타일이 젊은 층에게도 호평받는 등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 로드마스터
인디언 라인업에서 플래그십을 담당하는 쌍두마차 중 하나. 치프테인을 바탕으로 전면의 대형 페어링에 트렁크, 열선 시트와 열선 그립, LED 헤드라이트, 동승자용 플로어보드 등 투어링에 더욱 최적화된 모델이다.
- 스프링필드
인디언 모터사이클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스프링필드에서 이름을 딴 모델로, 치프테인, 로드마스터와 비슷한 핸들링 감각에 하드백 등도 동일하게 구성했지만, 치프 빈티지처럼 탈착 가능한 윈드스린이 있어 실용성과 스타일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 FTR
인디언 모터사이클에서 가장 이질적인 모델처럼 보이지만, 사실 미국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플랫 트랙 레이스에서 활약하는 FTR750을 일반도로용 버전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 챌린저
배거 스타일에 전면 페어링을 더해 스타일과 실용성 모두를 잡았다. 새로운 파워플러스 수랭 엔진에 역방향 텔레스코픽 포크, 조절식 쇼크 업소버 등을 구성해 크루저 치고는 운동성을 강조한 구성이 돋보인다. 덕분에 배거로 펼치는 ‘킹 오브 배거’ 레이스에서도 이 챌린저를 기반으로 튜닝한 챌린저 RR로 활약하고 있다.
- 슈퍼치프
치프 시리즈와 동일한 썬더스트로크 111 엔진을 사용하는데, 여기에 윈드스크린, 새들백, 플로어 보드 등을 추가했다. 리미티드 모델의 경우 업그레이드된 썬더스트로크 116 엔진과 크루저 핸들바, 라이드 커맨드 시스템으로 성능과 편의성 모두 업그레이드했다.
- 퍼슈트
로드마스터와 함께 플래그십을 담당하는 투어링 지향의 모델로, 페어링이나 트렁크, 각종 편의장비 등은 동일하지만 엔진이 수랭 방식이라는 점이 다르다. 최신 모델답게 라이드 커맨드 등 편의장비와 함께 IMU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첨단 기능들이 주행을 보조한다.
송지산 기자 song196@ridema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