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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갈채 받으며 화려하게 돌아온 미들급 슈퍼스포츠, 혼다 CBR600RR

기사승인 2024.10.22  17: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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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보기 드문 장면이긴 했다. 모터사이클 쇼 현장을 수년째 갈 때마다 브랜드에서 신제품을 발표하더라도 현장의 기자들 일부 정도만 박수 좀 몇 번 쳐주고 마는 분위기가 보통이었는데, 그 때 만큼은 뜨거운 박수와 함께 환호성까지 터져나왔을 정도니 말이다. 바로 지난 2023년 11월 밀라노에서 개최된 EICMA 현장에서 혼다 프레스 컨퍼런스 때 CBR600RR이 발표되던 순간이 그랬다. 가뜩이나 메이저 브랜드 일부가 불참한 데다 이렇다 할 신제품 없이 행사에 참가한 브랜드도 있어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상황 속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CBR600RR의 등장은 그야말로 한 줄기 빛이었다. 이 CBR600RR이 드디어 국내에도 출시를 알리며 시승회가 마련되어 지난 14일 전남 영암의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으로 향했다.

10년 넘게 모터사이클 분야를 담당하고 있지만 4기통 미들급 슈퍼스포츠 모델의 시승은 처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들급 슈퍼스포츠가 판매되고 있던 과거에는 리터급 모델에 집중하느라 상대적으로 미들급에 대한 개발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신제품이 나오더라도 연식 변경이나 소소한 변경점들만이 더해진 정도여서 시승회를 개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게 이어지다 결국 강화된 환경규제로 인해 브랜드마다 서서히 미들급 슈퍼스포츠의 단종을 선언했고,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것.

혼다코리아 이지홍 대표이사(왼쪽)와 미즈노 코이치 상무

새로운 CBR600RR에 대한 기대가 어찌나 높았는지 사전 계약이 1,700대를 넘겼다고 한다. 사전 계약 개시 당일 홈페이지에 장애가 생길 정도였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렸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물론 신제품이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그동안 많은 브랜드에서 미들급 슈퍼스포츠에 대한 개발과 생산을 포기하면서 중고 제품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으니 이번 신제품에 높은 관심이 쏠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혼다코리아 역시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관심과 계약에 당황하고 있지만, 혼다 본사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최대한 빠르게 물량을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한다.

혼다도 공백이 되어버린 시장을 노리면서 적당히 과거의 유물을 꺼내 먼지 좀 털고 디자인만 살짝 다듬어 내놓는 실수를 범하지는 않았다. 최소한 글로벌 1위 브랜드라는 자리에 있는 만큼 내놓더라도 제대로 만들어 내놓자는 생각으로 준비했는지 여기저기서 보이는 변화들이 보통이 아니다.

우선 먼저 핵심인 엔진. 보통 강화된 환경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출력을 낮추는 등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혼다에서는 스로틀 버터플라이 밸브 모양을 변경하고 밸브 타이밍 조절, 배기 시스템 구조 변경 및 촉매 시스템 강화 등을 통해 유로 5+에 대응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출력은 121마력/14,250rpm, 최대토크도 6.4kg·m/11,500rpm으로 오히려 전보다 향상됐다.

외관에서는 리어 시트 아래로 뻗어 나오는 CBR600RR 고유의 센터업 머플러가 그대로 이어져 마니아들을 열광하게 했다. 전면에선 최근 추세에 발맞춰 전면 페어링 좌우로 윙렛을 달아 다운포스를 높이며 공기역학 성능을 강화했는데 이는 플래그십 모델인 CBR1000RR-R에서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직선 주행 시 페어링 아래로 몸을 숨겨 공기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연료탱크 커버 상단을 10mm 낮췄고, 윈드스크린의 각도를 38°로 세팅해 공기역학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시트고는 820mm로, 워낙 날씬하게 차체를 다듬은 덕분에 키가 작아도 탑승이나 정차 시 큰 어려움이 없겠다.

계기판은 TFT 풀컬러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는데, 스트리트와 서킷, 미캐닉 3개의 테마를 마련해 사용자의 필요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여기에 연료계가 포함되지 않은 건(연료 부족 경고등은 있음) 옥의 티인데, 물론 트랙에서의 사용이 주목적인 제품이기 때문에 뺐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일반도로에서 탈 수 없는 트랙 전용 모델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탑재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향후 펌웨어 업데이트 등으로 해결할 수 있길 기대한다. 나머지 시인성 등의 요소는 만족스러웠는데, 속도 만큼이나 자주 보게 될 기어 포지션도 선명하게 잘 보이고, 아예 주행모드 상태창을 계기판 좌측 하단에 배치해놓아 현재의 상태 확인 및 빠른 변경이 가능한 점도 마음에 든다.

대략 차량을 살펴봤으니 이제 직접 타볼 차례다. 장비를 갖춰 입고 인스트럭터의 안내에 따라 서킷으로 들어섰다. 주행모드는 기본 3단계가 마련되어 있는데, 모드 1이 서킷 주행 등 가장 스포티한 주행에 적합하고, 모드 2는 서킷을 가볍게 달리거나 교외의 와인딩 등 펀 라이딩에, 모드 3은 편안한 주행에 초점을 둔다. 각각의 모드에 따라 엔진 출력 단계(P), 트랙션 컨트롤(T), 엔진 브레이크(EB), 윌리 컨트롤(W)이 변하는데, 기본 설정이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자 설정 모드도 2개 마련되어 미리 취향대로 설정해 주행 중 변경할 수 있다. 주행 중 모드 변경은 좌측 핸들바에 마련된 모드 버튼으로 순차적으로 선택할 수 있으며, 모드를 변경해도 스로틀을 되돌려야만 적용이 된다.

가볍게 모드 2 상태로 달리기 시작했는데도 파워가 꽤나 강력하다. 6,000~7,000rpm 전후로만 사용하는데도 차체가 쭉쭉 뻗어나간다. 메인 스트레이트에 들어서서 엔진 회전을 더 높여주니 최대토크 발생구간 언저리부터 차체가 한번 더 가속하는 느낌. 과장을 살짝 보태면 마치 과거 2행정 엔진의 파워밴드 구간에 들어선 것처럼 조금 전과는 다른 가속력을 경험할 수 있다. 여기에 절묘한 차량 세팅 덕분에 196cm의 큰 키에도 불구하고 직선 구간에서 스크린 아래로 몸을 숨기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코너 진입에 앞서 브레이크 레버를 꾹 쥐면 속도가 빠르게 떨어진다. 앞 브레이크에 혼다 차량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토키코 4피스톤 캘리퍼가 좌우 양쪽으로 장착됐는데, 최고급 사양은 아니어도 차체가 193kg으로 가벼운 덕분에 원하는 정도까지 속도를 떨어뜨리기가 수월하다. 코너 진입 전 꽤나 여유를 두고 브레이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도 비상등이 깜박인다. 일부러 작동시킨 것이 아니라 급제동 시 후행 차량에 위험한 상황임을 알려주는 비상 정지 신호(ESS) 기능이다.

여기서 빠질 수 없는 기능이 퀵 시프트와 어시스트 앤 슬리퍼 클러치다. 특히 서킷에서는 빠른 가속과 함께 코너 진입 전 빠른 하단 변속도 코너 탈출 이후 빠른 재가속을 위해 중요한데, 퀵 시프트는 클러치 조작이 필요없는 빠른 상/하단 변속이 가능하고, 여기에 어시스트 앤 슬리퍼 클러치는 하단 변속 시 백토크로 인해 뒷바퀴가 불안정해지는 부분을 크게 감소시키기 때문에 안정된 차체로 코너에 진입할 수 있다. 물론 클러치 레버가 있으니 이를 이용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여러 가지 신경 쓸 부분이 많은 서킷에서 하나라도 신경 쓸 점을 줄여주는 아이템이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서킷에선 가급적 퀵 시프트 사용을 권장하는 건 자칫 레버 조작을 잘못하면 그 즉시 뒷바퀴로 동력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불안한 움직임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너를 하나 둘 돌아나가는 움직임에서는 말이 필요할까. 원래부터도 혼다의 밸런스 잡는 실력이 뛰어났지만, 여기에 앞뒤 서스펜션으로 쇼와의 41mm 빅 피스톤 포크와 쇼크 업소버가 더해져 뛰어난 안정감과 함께 깔끔하게 코너를 돌아나간다. 서킷에서의 랩타임 갱신을 위해 달리는 사람이라면 앞뒤 모두 예압과 압축, 신장 모두를 조절할 수 있는 방식인 만큼 자신에게 맞는 세팅을 적용해 차원이 다른 움직임을 경험해보길 바란다.

이런 기본적인 설계와 함께 다양한 전자장비들도 민첩하면서도 안정적인 주행에 도움을 준다. 대표적으로 6축 관성측량장치(IMU)가 차량 정보를 수집하고, 다양한 장치들이 이 정보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움직임을 돕는다. 대표적으로 ABS나 트랙션 컨트롤(HSTC)은 물론이고 연료탱크 커버 아래로 숨어있는 전자식 스티어링 댐퍼도 직선에서든 코너링에서든 안정적인 핸들링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제는 보편화된 주행모드의 경우 전자 제어 스로틀(TBW)을 통해 같은 개도각이라도 다른 출력을 제공해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다른 가속을 제공한다.

과거 모델을 경험해 봤다면 신구 간의 비교가 가능하겠지만, 마지막으로 타본 모델이 십수년 전 지인이 중고로 구매한 걸 잠깐 타본 것이 전부라 이번 신형을 두고 승차감이나 성능 면에서 어떻게 나아졌는지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미들급 스포츠 특유의 경쾌한 움직임 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여기에 향상된 성능과 각종 전자장비들이 투입되며 과거 모델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다면 더 편하게 탈 수 있으면서도 차원이 다른 주행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다루기 어려운 리터급보다 다루기 쉬운 미들급 슈퍼스포츠가 더 즐겁다’는 건 누구나 잘 알고 있겠지만 그동안은 선택지가 없어 아쉬웠는데, 이번 혼다 CBR600RR의 등장으로 다시 한 번 미들급의 재미를 경험해볼 수 있게 됐다. 여기에 리터급 슈퍼스포츠가 이제는 3,000만 원까지 넘어가는 상황에서 1,790만 원이라는 예상보다 파격적인 가격 덕분에 국내 시장에서 다시 한 번 미들급 슈퍼스포츠의 인기를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송지산 기자 song196@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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