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로드 자동차’, 줄여서 ‘오프로더’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쪽을 얘기하면 미국이나 유럽 브랜드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일찌감치 시작된 자동차 문화를 바탕으로 긴 역사에서 쌓아온 오랜 명성이 있기 때문. 하지만 실제 아프리카나 동남아 같은 오프로드가 지천인 곳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는 차는 일본 브랜드다. 뛰어난 내구성과 성능을 바탕으로 진작에 폐차했어야 할 차들이 아직도 현역으로 세계 각지의 오프로드를 누비고 있는 것.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면 유명 다큐멘터리 채널 영상에서 험지를 누비는 차들을 잘 살펴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국내에선 워낙 오프로드 시장이 작고 마니아들도 한정적이라 들여오는 브랜드는 소수에 불과했는데, 의외의 브랜드가 이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바로 렉서스. 토요타에 4러너나 랜드크루저(둘 모두 국내 미출시)처럼 유명한 오프로더가 있는 만큼 이를 베이스로 실내외 디자인과 성능을 업그레이드한 모델을 렉서스 브랜드로 출시하는데, 이 중 랜드크루저를 베이스로 하는 LX 700h가 국내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직접 실력을 확인해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지난 20일 강원도 인제로 달려갔다.
처음 출시 현장에서 VIP 사양이 2대나 전시되어 있어 이쪽이 주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시승 장소를 마련한 것을 보면 이 모델의 지향점은 온로드보단 오프로드인 모양이다. 입구부터 바위 위에 바퀴 한쪽을 떡 걸친 LX 700h을 세워놓은 걸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에 확신이 든다. 내린천 주변으로 마련한 오프로드 코스는 각종 장애물은 물론이고 심지어 도강 코스까지 만들어놨고, 이 코스 제작을 위해 렉서스 본사 담당자가 방한해 현장에서 진두지휘했을 정도라고 하니,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에 설레기 시작한다.
내외관은 이미 지난 출시 현장에서 살펴봤지만 오프로드 쪽에 좀 더 집중해서 살펴보기로 했다. 일단 렉서스 특유의 디자인이 이어지지만, 트림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프레임리스 그릴의 경우 VIP나 럭셔리 사양은 은색이 적용되지만 오버트레일 사양은 검은색으로 처리해 좀 더 오프로드에 어울리는 모습이고, 휠 아치나 사이드미러 커버 역시 블랙 색상으로 터프한 맛을 살린 모습이다. 오버트레일 사양에는 18인치 휠이 적용되는데, 이는 오프로드 주파성을 높이기 위해 타이어 사이드월을 키우기 위한 선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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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트레일 사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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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사양과 럭서리 사양에는 2개의 버튼이 없다 |
실내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인포테인먼트 스크린 하단의 보조 스크린으로, 공조장치 제어용이기도 하지만 오프로드 주행과 관련된 내용을 표시하고 특정 기능을 작동시키는데도 사용된다. 아래로 위치한 각종 제어부는 물리 버튼을 적용했는데, 이는 차량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정확한 조작이 가능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렉서스 담당자들의 설명이다. 버튼 중에는 오프로드 관련 기능 제어용도 배치되어 있고, 오버트레일 사양의 경우 운전석 쪽으로 다른 사양에는 없는 2개의 버튼이 추가된다. 도어에는 상당히 큰 핸들이 눈에 띄는데, 몸을 단단하게 지지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시트는 VIP는 4인승, 럭셔리는 7인승, 오버트레일은 5인승으로 차이가 있다. VIP의 시트가 역시 가장 편하게 탈 수 있겠지만, 각자의 상황에 따라 선택지는 다른 법. 럭셔리 사양에선 3열에 타고 내리려면 2열 시트를 접어야 하는데, 보통 좌우 2:1 비율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인데 LX 700h는 좌측이 1, 우측이 2 비율로 나뉘어서 접히는 방식이다. 이는 우핸들 방식인 일본에서 개발해 좌측으로 내리는 방식으로 구성한 이후 따로 변경 없이 그대로 이어간 것으로 보여 조금 아쉬운 부분. VIP 사양의 경우 뒷좌석이 꽤 높은 편이어서 키가 큰 사람이 등받이를 세우면 머리가 닿아 조금 불편할 수도 있지만, 등받이를 눕히고 조수석까지 앞으로 밀어 접어내리면 여유 있는 자세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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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서리 사양 역시 함께 달리며 충분한 오프로드 실력을 입증했다 |
대략적으로 살펴봤으니 이제는 직접 성능을 확인할 시간이다. 기자가 속한 조는 오프로드를 먼저 체험하고 온로드 체험에 나서는 일정이다. 오늘 행사를 위해 렉서스에서도 많은 시승 차량을 배치했는데, 눈에 띄는 건 오프로드 체험에 오버트레일 사양과 함께 럭셔리 사양도 배치해놓았다는 것. 매끈하게 다져놓은 길이 아니라면 휠이 반드시 긁힐 텐데도 이렇게 준비해놓은 건 사양을 가리지 않고도 일정 이상의 오프로드 수준을 갖췄다는 자신감인 것이다.
인스트럭터의 시범 주행을 본 후 직접 차를 몰고 준비된 코스로 들어섰다. 국내에서는 온로드 실력만을 보여온 렉서스이기에 머리로는 오프로드 실력을 갖췄음을 인지하지만 마음 속에는 불안함을 떨치기 쉽지 않았다. 저속(low range) 기어로 변속한 후 인스트럭터의 안내에 맞춰 나아가는데 오프로더로 정평난 브랜드들 못지 않게 주파 실력이 상당하다. 구성된 코스도 그동안 경험해본 여러 체험코스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데 그런 코스들을 거침없이 나아간다.
여기에 마치 치트키 같은 기능이 있으니 바로 ‘크롤 컨트롤(crawl control)’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오프로드용 크루즈 컨트롤인데, 온로드용은 고속에서 편하기 위해 설정하는 것이라면 이 크롤 컨트롤은 오프로드에서 가속 페달의 조작이 필요없어져 조향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준다. 게다가 크루즈 컨트롤은 브레이크를 조작하면 그 즉시 기능이 해제되지만, 이 크롤 컨트롤은 브레이크를 밟아도 기능이 해제되지 않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적절히 브레이크를 조작하며 험로를 돌파할 수 있다.
여기서 이름에 붙은 h의 기능이 발휘된다. 이번 LX 700h는 기존까지의 토요타/렉서스의 하이브리드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기존에는 직병렬식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사용해왔는데, 이번 모델은 병렬 방식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한 것. 모터 제너레이터(MG)는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위치하고, 필요에 따라 모터만 또는 엔진과 모터가 함께 주행하는 방식은 동일한데, 이번 모델에는 클러치 역시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모터와 함께 배치해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엔진 단독으로 주행을 할 수 있게 했다. 이를 위해 별도의 스타터와 알터네이터(발전기)를 장착하고,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거쳐 12V 배터리로 들어오는 기존의 전기 공급 구조에서 12V 배터리로 직접 공급되는 구조를 함께 채택했다. ‘어디든 갈 수 있고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는 전동화 모델’을 위한 구성인 것. 덕분에 파워가 필요한 순간마다 엔진과 모터가 힘을 합쳐 바위들을 넘어가고 높은 경사의 오르막 역시 어려움 없이 올라챈다.
도강 실력도 만만치 않다. 무려 700mm라는 어지간한 오프로더 못지않은 도하 능력을 갖추고 있어 물에서도 거침없이 나아간다. 운전자가 할 일이라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놓치는 장애물이 없는지 자세히 확인하고 스티어링 휠의 조작에만 집중하면 되니 편하다. 물론 오프로드 마니아라면 알아서 다해줘 할 게 없어져 재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이제 막 입문하는 사람이라면 걱정거리를 덜어주니 최고의 기능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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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트레일 사양은 앞바퀴와 뒷바퀴의 디퍼렌셜(차동기어)를 개별적으로 잠글 수 있어 험지 돌파에 더 유리하다 |
오프로드 주파를 위해선 디퍼렌셜 잠금 기능이 필수적인데, 오버트레일 사양은 여기에 상황에 맞춰 앞바퀴나 뒷바퀴 각각의 디퍼렌셜을 잠그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다른 사양에는 없는 오버트레일만의 특화 기능인 것. 덕분에 한쪽 앞바퀴와 반대쪽 뒷바퀴가 허공에 뜨는 모굴 구간에서도 어려움 없이 나갈 수 있고, 큰 바위로 구성된 락 구간에서는 앞바퀴만을 잠궈 통과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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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식으로 감쇠력과 스프링 레이트를 조절할 수 있는 유압 서스펜션이 적용되어 오프로드에서 상당한 충격 흡수력을 보여준다 |
이렇게 오프로드를 주파하면서 가장 놀란 점은 다른 오프로드 모델들에 비해 흔들림이 적다는 것이다. 운전자가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오프로드에서는 바위 등을 넘는 순간 차체가 앞뒤좌우로 크게 요동치기 때문에 자칫 방심하다가는 머리가 뒤흔들려 창문이나 B필러에 부딪히는 일이 일상다반사인데, 이번 LX 700h를 시승하는 동안에는 한 번도 머리를 부딪힌 일도 없었던 건 물론이고 주행하는 내내 손잡이를 한번도 잡지 않았다. 그만큼 차체의 흔들림을 잘 억제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 렉서스는 LX 700h에 전자식으로 조절 가능한 유압 서스펜션을 적용했다. 일반적으로 플래그십 모델이면 승차감 향상을 위해 에어 서스펜션을 탑재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모델은 오프로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높은 내구성이 필요하고, 더불어 에어 서스펜션을 탑재하는 건 유압식에 비해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해 효율이 낮다는 것이 렉서스 측의 설명이었다. 덕분에 오프로드에서도 렉서스다운 편안함을 경험할 수 있었는데, 가족들과 함께 오프로드를 즐기기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렇게 오프로드 체험을 마치고 다음은 온로드 시승이다. VIP 사양을 받아 인스트럭터의 뒤를 따라 도로로 나섰다. 그동안 토요타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2.4L 엔진과 전기모터를 조합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번 모델은 다르다. 3.5L V6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에 전기모터를 더해 최고출력 464마력, 최대토크 66.3kg·m의 성능을 내는데, 이 중 순수하게 엔진만의 출력은 415마력이니, 모터의 기여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다른 하이브리드 모델을 생각하면 풀 하이브리드에서 마일드 하이브리드에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물론 이 정도 성능이 약하다는 것은 아니다. 마음먹고 가속 페달을 밟으면 거대한 덩치가 거침없이 내달린다. 464마력의 파워면 폭발적인 가속이 나오길 바라겠지만, 차량 무게가 2.8톤으로 상당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정도 시원한 가속감으로 만족해야 한다. 다만 배기량이 크고 모터의 비중이 기존 하이브리드보다 낮다는 점, 그리고 덩치만큼 무게도 상당하다는 점 때문에 연비는 높지 않다. 복합 기준 8.0km/L이고 도심도 7.7km/L, 고속 8.5km/L다. 덩치를 생각하면 이해가 가긴 하지만, 하이브리드라는 걸 생각하고 구매를 고민하던 소비자에게는 조금 주춤하게 되는 부분이리라 생각한다.
뒷좌석의 편안함에 대해선 말이 필요할까. 앞좌석 등받이에 스크린이 각각 매달려 있어 각자 컨텐츠를 감상할 수 있는데, 문제는 헤드셋 연결방식이 유선이라는 점. 블루투스로 스마트폰 연결은 지원하니 빠른 업데이트로 헤드셋 연결이 지원되면 조금 더 편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1열 콘솔박스에는 냉장고가 마련되어 음료수를 시원하게 보관할 수 있다. 2열 사이에도 추가적인 콘솔박스가 장착되어 있고, 내부에 USB 충전포트나 HDMI 연결포트 등이 갖춰져 있다. 시트의 경우 2열 가운데의 터치 스크린으로 조작할 수 있고 시트 포지션은 물론이고 마사지 기능까지 갖추고 있는데, 에어 포켓을 부풀리는 방식의 마사지가 아닌 시트 내부의 지압봉이 눌러주는 방식이어서 이동하는 동안 잠깐이라도 몸에 쌓인 피로를 풀어내기에 좋겠다.
LX는 첫 출시 때부터 오프로드 성능까지 고려한 전천후 모델로 출시되어 몇 가지 오프로드 관련 주행모드를 탑재한 일반 SUV들과는 차원이 다른 성능을 갖췄다. 이번 LX 700h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연비를 끌어올리기 위한 것보다는 오프로드 주파성을 높이기 위한 파워 향상의 목적이 더 크다. 따라서 편안한 승차감과 온로드에서의 우수한 연비를 기대한다면 차라리 LM 쪽을 선택하는 것이 낫지만, 탑승자 모두가 더 편하게 오프로드를 즐기길 바란다면 LX 700h가 정답이 될 것이다. 다만 렉서스에서도 이런 뛰어난 오프로드 성능을 고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이번에 시승회를 진행한 공간처럼 별도의 상시 체험 장소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