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미미했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이 있다. 이는 모든 자동차 브랜드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지만 그 중에서도 이 말에 가장 잘 들어맞는 곳이 있다. 바로 현대차그룹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다. 시작 당시만 하더라도 유명 수입 브랜드들과 경쟁할 수 있겠냐는 우려가 많았는데, 지금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소비자들을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하고 있다.
제네시스도 세단과 SUV 2개 카테고리로 6종의 제품을 선보이고 있는데, 그 중 제네시스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모델은 G90이다. 중후한 외관에 넓은 실내공간으로 VIP용, 의전용 차량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 중후함을 한도치까지 끌어올린 신제품이 등장했다. 중후함을 상징하는 색상 검정으로 온 차체를 덮어버린 G90 블랙이다. 출시에 맞춰 전시장을 방문해 제품 내외부를 살펴봤는데, 이번에 시승 기회가 생겨 직접 타며 G90 블랙의 매력들을 살펴보았다.
국내 소비자들의 검정색에 대한 선호도가 워낙 높다보니 사전 정보 없이 실물을 마주한다면 일반적인 검정색 세단 정도로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G90 블랙은 디테일에서 차별화를 보여준다. 눈썰미가 좋다면 아마 사진만으로도 금방 알아챌 수 있을텐데, 일반적으로 자동차는 하나의 색상만으로 구성하지 않는다. 강조하고 싶은 부분의 경우 눈에 띄는 색상을 사용하는데, G90 블랙은 이러한 부분들까지도 꼼꼼하게 검정색을 적용했다. 대표적으로 윈도우 몰딩 쪽은 은색의 크롬을 사용해 측면에서의 형태를 만드는 요소로 사용하는데, 이 부분을 블랙으로 처리했다. 그리고 헤드라이트에서 이어지는 측면 라이트 주변에도 일반 모델은 크롬 가니시를 더해 강조하는데, 이 역시 검정색이 사용되니 느낌이 확실히 달라진다. 정면의 크레스트 그릴, 후면의 머플러 가니시 등 가능한 모든 곳을 검정색으로 꼼꼼하게 덮었다. 심지어 로고와 후면의 제네시스 글자까지도 검정색인데, 차체색과 동일하게 하면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농도를 살짝 조절해 같은 검정색이지만 눈에 잘 띄게 해놓았다.
실내는 당연히 모든 요소들, 시트나 가죽의 바느질 실, 스피커 커버, 각종 스위치나 레버 등 대부분을 검정색으로 덮어 차분함을 넘어 중압감이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외관과 마찬가지로 흑백의 농도를 조절해 거대한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부분마다 농도를 달리 한 것이 마치 조선시대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여기에 도어 트림에는 리얼 우드 가니쉬를 더해놓았는데, 블랙 컬러의 우드 소재에 금선으로 장식을 더해 수입 브랜드의 럭셔리함과는 다른, 한국 전통의 멋을 살린 고급스러움이 색다른 느낌을 제공한다. 스티어링 휠 중앙의 엠블럼 역시 외부에 장착된 것과 마찬가지로 톤을 낮춘 검정색이 적용되었다.
내외장이 모두 검은색이라고 해서 G90의 본질에 소홀한 것은 아니다. 운전석 뿐 아니라 뒷좌석까지도 의전 같은 용도에 맞춰 각종 고급 사양들을 추가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퍼스트 클래스 VIP 시트가 있다. 기본적으로 레그 서포터에 슬라이딩과 리클라이닝 기능을 갖춰 탑승자가 누운 자세로 이동 중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마사지 기능을 더해 장시간 이동할 때 몸에 쌓인 피로를 푸는데 도움이 된다. 조수석 헤드레스트 뒤편으로 8인치 터치 디스플레이를 달아 각종 인포테인먼트 콘텐츠를 사용할 수 있고, 스크린과 함께 차내 각종 기능들을 조작할 수 있도록 뒷좌석 중앙에 센터 콘솔이 더해져 편안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면서 원하는 콘텐츠를 찾아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여기에 오디오는 15개 스피커로 구성된 뱅앤올룹슨 제품이 더해져 뛰어난 음질을 제공해 콘텐츠 몰입감을 배가시킨다.
G90 블랙에는 기본적으로 3.5 터보에 48V 슈퍼차저를 더한 엔진이 장착된다. 굳이 터보엔진에 슈퍼차저를 더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는데 도로로 나가 달려보니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출발 과정에서 급가속을 시도하면 터보 엔진은 필연적으로 터보랙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슈퍼차저를 더해 이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슈퍼차저는 구동력을 이용해 작동하지만, G90의 슈퍼차저는 전기로 작동하기 때문에 트렁크 바닥면 아래 탑재된 배터리에 충전된 전력을 사용해 가동이 시작되면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어우러져 대형 세단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파워풀한 가속 성능을 보여준다. 여기서도 이 정도로 강력한데 스포츠 세단인 G70 같은 모델에 탑재되면 얼마나 재밌을지 궁금해진다. 다만 현재는 G90과 GV80 정도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점은 아쉽지만.
크고 무거운 차체에도 불구하고 움직임이 예상보다 훨씬 날렵하다. 이런 플래그십 모델에 맣이 도입하고 있는 능동형 후륜 조향(리어 휠 스티어링) 기능 덕분이다. 뒷바퀴가 저속에서는 앞바퀴와 반대 방향으로 조향해 민첩성을 높이고, 고속에서는 같은 방향으로 조향해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물론 평소에는 느끼기 쉽지 않겠지만 도심에서 유턴을 하는 상황에선 5.2m의 거대한 차체를 돌리는데도 경차 수준의 회전반경으로 돌아나가는 모습에서 존재감을 확 드러낸다.
전반적인 승차감은 대형 세단에 걸맞은 부드러움을 보여주지만, 고속으로 넘어가면 나름 단단하게 바뀌며 안정감 있는 주행이 이어진다. 스포티한 움직임이든, 저속에서의 여유로운 주행에서든 각각에 맞는 감쇠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제네시스는 이를 멀티 챔버 에어 서스펜션과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으로 해결했다. 카메라로 노면의 정보를 파악해 에어 서스펜션의 감쇠력을 변경해주기 때문에 환경에 맞는 최적화된 승차감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안전 기능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플래그십 모델인 만큼 최첨단 기능들이 모두 갖춰져있다. 충돌방지 기능은 전방, 후측방, 후방 교차 등 주행 상황뿐 아니라 주차 과정에서도 전면과 측면, 후방 등의 돌발 차량에 대해서도 충돌을 방지한다. 또한 다중 충돌방지 자동제동 시스템, 진동 경고 스티어링 휠 등 다양한 안전 기능이 보조하는데, 이 중 스티어링 휠의 진동 경고 기능은 제네시스 뿐 아니라 그룹 내 모든 브랜드의 차량으로 도입이 확대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니 말이다.
주행보조 기능 역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차로 유지 보조, 고속도로 주행보조 2 등 현대차그룹의 최신 기술들이 더거 투입됐다. 여기에 액티브 로드 노이즈 컨트롤, 이중접합 차음 유리 등 승차감을 높이는 기능들도 있으며, 공기청정 시스템, 수납함 향균 기능 등 쾌적함을 높여주는 기능들도 두루 갖춰져 있다.
제네시스의 이번 G90 블랙 출시는 국내 자동차 시장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이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스페셜 에디션이 나왔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과 멋을 제품에 녹여냈기 때문이다. 많은 브랜드들이 경쟁하는, 그 중에서도 프리미엄 세단 시장에 한국의 색을 입힌 제품을 내세운 제네시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도 이런 시도가 늘어나 한국의 멋과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는 제품들이 글로벌 시장에 더 많이 선보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송지산 기자 song196@ridema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