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장이란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전동화가 이뤄지는가 했는데 ‘충전 인프라’와 ‘충전 속도’라는 장벽을 만나 흐름이 잠시 주춤해졌고, 그 덕에 전동화 과도기를 담당하던 하이브리드 모델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 또한 계속 이어지지는 못할 것이고 종국에는 내연기관의 종말, 화석연료의 사용 중단이라는 목표에 도달해야겠지만, 지금 현재로선 충전 인프라에 대한 고민도 필요 없고 기존 내연기관처럼 빠르게 주유해서 운행이 가능하며 높은 연비와 낮은 오염물질 배출 등의 이유로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가장 합리적인 선택으로 각광받고 있다.
하이브리드 시장을 두고 많은 브랜드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얼마 전 사단법인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에서 선정한 ‘2024 올해의 차’ 하이브리드 세단 부문에서 혼다의 어코드 하이브리드가 선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다양한 자동차를 만나고 타보는 것이 일인 사람들에게 어코드 하이브리드가 어떤 매력으로 다가왔을지 궁금해 다시 한번 시승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외관은 특별히 화려한 건 아니지만 가만히 보고 있자면 꽤나 잘빠진 몸매라는 느낌이 먼저 든다. 특히 옆에서 볼 때 이런 느낌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전 세대보다 65mm 길어진 차체의 비율을 잘 나눠놓은 데다 헤드라이트부터 시작된 곡선이 루프를 지나서 후미로 부드럽게 떨어지는 패스트백 디자인이 채택된 것이 이유일 듯하다. 여기에 눈꼬리 주변에서 시작된 캐릭터라인이 벨트라인 아래를 지나 리어램프 상단부 근처까지 이어지는 형태를 취하며 차량의 날렵함을 강조한 것도 또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정면에서 바라보는 어코드의 표정은 화려함보다는 수수함에 가깝다. 헤드라이트는 상단에 바 타입의 주간주행등을 더해놓았고, 그릴은 좌우 사선에 가로줄을 더해놓은 메시 방식인데 이는 실내 트림에서도 동일한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다. 전면부에서도 그릴 상하단으로 라인을 더해 입체감을 끌어올렸고, 하단 범퍼에는 송풍구를 더해 디자인적으로도 스포티함을 끌어올렸다. 후미에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라이트바를 더해 차체가 더 넓어 보이게 했다.
실내 역시 이전 세대보다 크게 업그레이드됐다. 계기판과 센터 디스플레이 모두 TFT 스크린을 적용해 화질이 훨씬 선명해졌다. 특히 센터스크린의 경우 스크린 좌우로 배치된 단축키를 모두 제거하고 12.3인치 대형 사이즈를 적용한 덕분에 표시 내용도 시원시원하고 터치 반응 속도도 즉각적이어서 좋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는 기본 내비게이션을 탑재하지 않은 대신 안드로이드 오토와 애플 카플레이를 유무선 모두로 지원하기 때문에 스마트폰에 설치된 내비게이션을 사용할 수 있어 불편함이 없다.
아래 송풍구와 비상등 버튼 주변은 전면 그릴과 같은 메시 형태의 장식이 덮고 있어 외관과 일체감을 준다. 아래로는 물리 조작계로 구성된 공조장치 조절부가 있어 운전 중에도 편리하게 쓸 수 있다. 레버 방식으로 회귀한 변속기 아래로는 주행모드 조절 레버가 있고, 그 아래 배터리 모양의 버튼이 있는데 이걸 눌러 배터리 사용 방식을 바꿔줄 수 있다. 차량이 상황에 맞춰 배터리와 내연기관을 오가는 EV 오토 모드가 있고, 배터리에 내장된 전력을 우선적으로 소모하는 EV모드, 그리고 배터리 충전에 중점을 두는 차지 모드가 있다. 차지 모드는 자주 쓸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이유는 다른 모드에서도 충전된 전력이 일정 이하로 내려가면 차량이 알아서 엔진을 작동시켜 배터리를 충전하기 때문. 아마 이 설정에 크게 신경 쓰지 않거나, 가끔 골목길이나 주차장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싶을 때 EV 모드를 사용하는게 전부가 아닐까 싶을만큼 똑똑하게 전력을 관리해 효율성을 끌어올린다.
실내 공간은 준대형급에 걸맞은 널찍함을 갖추고 있다. 혼다의 플래그십 모델인 레전드가 국내에 단종된 상황이지만, 그 자리를 어코드가 메우기에도 충분할 만큼 넉넉한 수준이다. 기자의 키가 196cm로 꽤 큰 편임에도 뒷좌석 공간에 성인이 문제없이 탈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여유 있으니 말이 더 필요할까. 다만 패스트백 디자인을 채용한 만큼 헤드룸의 부족은 조금 아쉬울 수 있지만, 이 정도 스타일이라면 헤드룸 약간은 포기해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만일 이걸 구매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뒷자리에 탈 일은 없을테니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여기에 정숙성 역시 으뜸인데, 창문을 열었을 때와 닫았을 때의 소음 차이가 상당하다.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 시스템을 탑재하고 전면 윈드실드와 1열 도어에 차음 유리를 적용한 덕분으로, 기회가 되면 고속도로에서 직접 확인해보는 걸 추천한다. 이렇게 뛰어난 정숙성에 엔진 작동을 최소화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까지 더해지니 차에 타 있는 동안의 즐거움이 늘어난다.
본격적인 시승에 나서며 처음 느끼는 건 파워가 예전보다 크게 향상됐다는 점이다. 특히 여러 종류의 하이브리드를 타면서 아쉬웠던 답답했던 성능의 갈증이 싹 해소됐다. 최고출력은 2.0L 엔진이 147마력/6,100rpm, 2개의 전기모터가 184마력/5,000-8,000rpm의 성능을 낸다. 전기모터는 이전과 동일하고, 엔진만 2마력 정도 상승했는데 체감적으로 이렇게 큰 변화가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은 2023년 혼다가 발표한 4세대 2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혼다는 다양한 형태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개발해 자사 제품에 적용하고 있고, 이 중 가장 주력으로 사용되는 것이 2014년 발표한 2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로는 발전기 모터, 전기 추진 모터, 발전기 역할을 하는 엔진, 배터리와 이를 제어하는 하드웨어를 갖춘 IPU,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총괄 제어하는 전력제어장치인 PCU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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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세대(왼쪽) 하이브리드 시스템과의 비교. 모터의 배치를 바꾸고 내부 구성 요소의 업그레이드로 향상된 성능을 제공한다 |
구동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모터의 경우 기존과 배치 방식이 바뀌게 되며 더 강력한 힘을 내는 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됐으며, 기존보다 최고출력을 내는 범위가 더 넓어져 조작에 따른 응답성을 향상시켰다. 또한 희토류를 사용하지 않은 새로운 방식의 모터는 내부에 멀티 링 구조를 채택해 모터의 최대 회전 속도가 11% 향상된 14,500rpm에 달한다. 여기에 고속 록업 클러치를 더해 엔진 회전수를 줄여 엔진과 모터가 함께 작동하는 고속도로에서 더욱 편안한 승차감을 제공한다. 여기에 엔진 역시 함께 업그레이드됐다. 연료분사 방식을 다단계 직분사 방식을 채택해 출력과 토크를 모두 높였다. 덕분에 질소산화물이나 탄화수소 역시 배출량이 줄어들었다고.
보통 이코노미(ECON) 모드라면 효율을 위해 성능을 극단적으로 낮춘 느낌이 확 들게 마련이다. 마치 뒤에서 차가 달려나가길 싫어하는 누군가가 뒤에 매달려 있거나 뒤로 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신형 어코드 하이브리드는 이 방해꾼들이 싹 사라졌다. 이코노미 모드에서도 조금만 페달을 깊숙이 밟아주면 강력한 파워가 거침없이 쏟아진다. 전에는 120~130km/h정도까지 속도를 내려면 답답함을 참고 꾸준하게 가속 페달을 밟아줘야 하지만, 이제는 금방 도달하는 건 물론이고 140km/h도 가볍게 넘기는데 힘이 남는다. 안전을 위해 속도를 늦추지만 이 정도라면 서킷에서의 스포티한 주행까지 시도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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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모터의 특성 상 효율이 떨어지는 고속에서는 클러치로 엔진을 구동축에 직접 연결시킨다 |
물론 더 강력해진 주행성능도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매력이지만 가장 큰 매력은 역시 효율성이 아닐까? 전기모터를 중심으로 엔진이 틈틈이 보조해주는 것이 이런 풀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작동 방식이지만, 가다 서다가 잦은 시내 구간에서는 효율성이 높으나 뻥 뚫린 고속도로에서의 고속 주행에서는 연비가 오히려 시내보다 낮게 나오는 단점도 존재했다. 그러나 혼다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이러한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고속 주행에서 효율성이 우수한 내연기관을 활용하기로 결정하고 고속 주행에서 엔진을 클러치를 통해 구동축과 직접 연결시키는 방식을 더해 효율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다양한 테스트로 운전이 꽤나 거칠었음에도 18km/L를 넘는 연비를 보여주었고, 여기에 시내 구간을 통과하면서는 전기모터의 개입이 늘어나며 연비가 오히려 더 오르기 시작해 20km/L도 가볍게 넘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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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가 향상됐음에도 승차감은 여전히 차분하다. 조금 속도를 높여 커브를 돌아나가는 상황에서도 불편한 느낌 없이 깔끔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모션 매니지먼트 시스템’이라는 신기술을 적용한 것이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이는 파워트레인이나 브레이크를 조절해 커브를 돌아나가는데 필요한 충분한 그립력을 확보하는 기능이다. 운전자가 직접 브레이크나 액셀러레이터를 조작해 동일한 움직임을 구현할 수도 있겠지만 매번 도로 환경이나 속도에 따라 최적의 조건에 맞춰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운전자가 완벽하게 맞추지 못한 부분에 컴퓨터가 개입해 약간의 조작을 추가함으로써 가장 최적의 상태로 커브를 돌아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번 시승에선 궂은 날씨로 와인딩 코스를 달려보거나 하진 못했지만, 과거 첫 출시 때 대관령 일대에서 시승을 진행하며 굽이친 대관령 산길을 달려봤을 때 짧은 커브가 이어지는 구간에서도 민첩하게 머리를 돌려가며 코스를 공략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핸들링 실력만 놓고 본다면 어지간한 스포츠카와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을만큼 움직임이 정말 날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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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아찔한 퇴근길 정체를 마주하게 됐다. 이럴 때 빛나는 것이 바로 각종 주행보조 기능과 안전 기능들을 모아놓은 혼다 센싱이다. 길게 고민하지 않고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로 유지 보조 기능을 작동시키니 한결 편하다. 그렇다고 완전히 방심할 수는 없는 것이 갑작스레 끼어드는 차량이 있는 만큼 안전을 위해 손은 스티어링 휠에, 발은 브레이크 페달에 올려놓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다. 퇴근길 정체라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상황이지만 직접 운전하는 것만큼 자연스럽게 앞차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정체 구간을 뚫고 나간다. 정체가 극심한 구간에선 수초간 멈춰 서있다가 출발하기도 하는데, 이 때 가속페달로 차를 출발시킬 경우 섬세하게 조작하지 않으면 울컥거리면서 출발하게 되어 탑승자 모두 불편할 수 있다. 이 때 스티어링 휠의 속도 조절 레버를 조작해주면 훨씬 매끄럽게 출발할 수 있으니 적극 활용하는 걸 추천한다. 앞 차와의 거리가 줄어들 때 컴퓨터가 충돌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계기판, HUD, 소리로 경고를 보내는데, 운전자가 조작하는 것보다 조금 빨리 울려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경고를 끄거나 반응 속도를 늦추지는 않길 바란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니 말이다.
이번 어코드 하이브리드를 보며 혼다의 개발진을 비롯한 임직원들에게 적잖은 변화가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꽤나 보수적이라는 평가와 달리 외관은 물론이고 성능이나 기능 면에서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변화를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러한 변화가 시장을 이끌 만큼 급진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변화의 속도를 높여 전반적인 흐름에 어느 정도 발맞췄다는 부분에선 충분히 긍정적이다. 이런 변화의 분위기가 다른 모델에도 이어져 앞으로 예상을 넘어서는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모델들을 다양하게 선보여주길 기대해본다.